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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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

2017-06-02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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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어스름한 새벽을 여니 유월의 창이 붉다. 오선지의 음율을 단락이 조절해주듯이 삶의 행간마다 찾아오는 계절은 기다림보다 앞서가야 할 새 길을 열어놓는다. 눈 쌓인 개울 건너고 벚꽃 잔치 한창인 산등성이를 지나 목덜미 할퀴는 장미 거리에서 서성인다. 바람 가른 골목마다 붉게 물든 장미가 녹슨 감성의 페달을 굴린다.

오래전 아들이 열 살쯤 되던 해의 일이다. 업스테이트 뉴욕에 위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32대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유월의 신록이 열병한 고속도로를 한 시간가량 달려서 찾아간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정원에 가까웠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생가의 건물이 아득하게 보이고 정문 오른편으로 장미정원이 있었다. 종류별로 모아 심고 이름을 새긴 푯말이 세워져 있어서 아들과 학습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빨강, 노랑, 분홍, 희고 파랗고 특이하게 겹겹이 포개진 장미에 홀려 멋진 맨션에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장미정원에 머물렀던 기억이 새롭다. 허드슨 강을 뒤로하고 돌과 나무의 고른 배열로 조화를 이룬 화사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조금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실내가구와 조명이 대통령의 생가를 대충 둘러보고 나오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장미꽃의 강렬한 잔상이 오래 머물러 본모습보다 흐리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뒤로도 가끔 다른 곳의 정원을 찾았지만, 그때의 감흥은 일지 않았다. 열정과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붉은 장미꽃은 젊을수록 당기는 기호식품과 같은 것일까. 세월의 먼지가 마음의 창에도 얼룩져 감정도 굴절시키나 보다. 까닭 없이 기다려지던 장미꽃은 이제 더 이상의 감동을 안기지 않는다. 크리스털 화병에 영양제를 첨가해도 며칠을 못 버티고 시들어버리는 장미다. 존재감이 드러날수록 떠나는 뒷모습은 아련하기만 하다.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꽃의 마지막 모습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패잔병같이 쓸쓸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화려한 장미꽃보다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은은한 안개꽃에 마음이 더 간다.

장미꽃의 근본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이련만 향기 잃고 장미보다 더 많은 가시를 품어야 하는 이유를 내게 물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몰려가다 하트가 되어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손은 흠집 난 마음을 그렇게 어루만져준다. 마음 가난한 나는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회색 콘크리트 벽을 넘어온 덩굴장미 터널에 선다.

간밤에 내린 빗방울의 영롱함이 목마른 시심을 적신다. 장미꽃 한 송이에는 설익은 사랑도 완성 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 한들 뒤처지지 않는 그의 독보적인 자태와 축배를 드는 순간 가슴 아린 가시는 있다. 이 세상에 흠 없는 완전한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성서를 묵상하게 한다.

시인 릴케는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글귀를 자신의 묘비에 새겼고 이해인 시인은 "가시에 찔려 더욱 향기로웠던 나의 삶"이라고 장미꽃을 노래했다. 시련은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든다. 그 위에 눈물로 꽃을 피운 사람을 만나면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게도 된다. 아문 상처가 깊을수록 향기도 멀리 가고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함께 물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나는 장미꽃을 받으면 바로 마음의 돋친 가시를 빼내듯 가시를 다 자르고 벽에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가시 빼낸 자리에 눈물이 고이고 상처가 아파도 고통만큼 성숙해지는 사랑을 품고 사위어 간다. 하루가 길게 드리운 날에 장미와 마주치다 지난 여행에서 친구가 건네준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립스틱을 붉게 발라야 자식에게 좋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삶보다 타인을 생각하며 살아갈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가 아무리 장미꽃을 홀대한다고 해도 그러나 어쩌랴 이미 와버린 장미의 계절에 스스로 물들어 가고 있으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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