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음악회가 주는 것들

2017-06-01 (목) 홍성애/ 뉴욕주 법정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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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부터 시작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구속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국인 모두에게 아주 힘들고 예측 불허의 암울한 시기였다. 매일 접하는 뉴스들이 너무 충격적이고 다음엔 무슨 일이 드러날까 가슴 죄이는 순간의 연속이지 않았는가?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이,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되고 분위기가 확 달라진 혁신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즈음, 나는 한국일보 후원의 고향을 그리는 음악회 광고를 접하고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 참석하기로 당장 결정했다.

날씨도 쾌청한 5월의 한 일요일 저녁, 스테인 글라스로 예쁘게 장식된 아담한 한 성당에서 열린 음악회는 꽉 찬 청중들로 만석이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참석했을까? 음악 감독의 구수한 해설을 곁들인 우리 동요, 가곡 그리고 우리 귀에 익은 외국 곡들로 구성된 오늘의 음악회는 듣는 이들에게 아름답고 평온한 마음을 갖게 했다. 감성적으로 때론 아주 열정적으로 부르는 클래식 성악가들의 노래솜씨, 합창, 기악연주 등 아주 수준급이었다.

우리 가곡 중 특히 ‘얼굴’, ‘내 맘은 강물처럼’ 그리고 ‘향수’는 우리 속에 잠재해 있던 아련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얼굴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문득 2,000년에 떠나신 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상기했다. 90세 가까이 장수하신 어머니의 긴 일생중, 하필이면 자그마한 나무관속에 몸이 쪼그라진 듯 작아지신 우리 어머니가 주무시듯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 계신 장면일까? 아마도 맏딸로, 결혼후 줄곧 해외를 떠돌며 산 탓에 가까이서 뭐 하나 살뜰하게 해드리지 못했고 같이 지낸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기에 늘 맘속에 죄책감이 있었던 때문일 게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몇 차례 갈아타고(그 때는 시드니 하계올림픽이 열린 해로 직행 표를 구할 수 없었다) 20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한 시드니-그 곳에 사는 남동생이 효성스럽게 모셨던 어머니는 당신이 늘 즐겨 찾으셨던 해안가에 유해가 뿌려졌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다. “먼 데서 날 보러 왔네! 피곤하겠다.

와 줘서 고맙구나” 하시는 듯, 그러나 어머니는 말없이 날 맞이하셨다. 순간, 어머니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면서, 그 시대 어른들이 다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 소용돌이치는 해방직후, 6.25 사변, 부산 피난민 시절, 4.19, 그리고 5.16 등등, 그 모질고 험한 세월 속에서도 우리 삼남매를 극진히, 희생적으로 키워내신 우리 어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얼굴이 한-없이 평화롭고 광채가 나는 듯 보였다. 그런 어머니를 그리며 떠오른 것은 자연히 두고 온 나의 조국이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정말 죄송했어요.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그래도 내색 않으시고 우릴 위해 늘 기도하셨지요. 어머니의 그 마음이 지금 간절히 느껴져요.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날이 낀 5월의 저녁에 펼쳐진 음악회는, 춥고 긴 겨울 내내 겪었던 놀람, 분노, 불안, 원망 등 암울한 감정들을 어루만져 주면서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과 함께 애잔하게 슬프면서도 마음이 한 없이 맑아지는 듯 기쁨 또한 느끼는 밤이었다.

<홍성애/ 뉴욕주 법정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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