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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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 젖은 붉은 입술

2017-05-27 (토) 원혜경/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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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립글로스만 바르다 금년 새해부터 빨간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창백한 나의 입술이 눈에 거슬리며 이제 뭔가의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입술은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이제 지인 분들은 애칭으로 ‘붉은 입술’ 이라고 나를 불러준다.

어딘가 한 군데 포인트를 주면 시선을 살짝 옮겨주기 때문에 주름을 가리는데 좋다고 화장품 가게에 계신 분이 조언해 주었는데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나서 주변 분들이 젊어 보인다, 잘 어울린다 는 말을 많이 하신다. 그 소리에 신나서 몇 개의 립스틱을 사고 선물도 받았다.

빨간 입술의 속설을 들어보면 불황일수록 여자들이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고 한다. 이유는 기분전환으로 사는 립스틱은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과 늙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외모뿐만 아니라 체력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예전 같지않다 라는 것을 느끼면 왠지 서글퍼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 마음은 감성이 풍부했던 양 갈래 머리 그때 그대로인데 말이다.


어릴 때 생각으로는 40세면 많이 늙을 줄 알았다. 내 나이가 40세가 되었을 때 마음이 그대로였고 50세가 되면 더 많이 늙을 것 같았는데 50세가 되어서 보니 또 그대로이고 60세가 되면 아주 많이 늙을 것 같았는데 60세가 코앞에 놓였는데도 그대로인 것을 보니 아마도 70세가 되어도 80세가 된다고 해도 그대로일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촉촉이 젖어오고,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고,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오르니 아직은 감성이 살아있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

. 나의 감성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문학을 많이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시대에는 문학 소년과 소녀가 참 많았다. 그래서 교회나 학교에서 진행하는 문학의 밤도 있었고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도 있어서 여유롭게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시대는 감성이 메말라서 참을성도 없어지고 과격하고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감성인데 학생들에게도 그런 감성을 심어주기 위해 문학을 접할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붉은 입술로 외모의 속임수를 쓰며 겉껍데기(외모)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지만 시를 읽고 글을 쓰며 음악에 젖어있는 나의 속 알맹이(감성)는 오늘도 세월을 이기며 살아가고 있기에 감사하다.

<원혜경/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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