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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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2017-05-26 (금)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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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겨우내 주인없던 빈 화분에 보라색 꽃대가 올라오고 우거진 풀섶 사이로 이름모를 하얀 꽃이 피었다 사라진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 겨우 새순을 내민 앞 뜰의 나무를 들여다 보며 조급해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으며 허둥지둥 여름을 맞았다.

아내를 피정에 보내고 혼자 남은 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는 핑계로 아내를 따라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을 놓치고 이른 저녁을 식은 피자로 대신하며 곁들인 맥주 한 잔이 편안했다. 밀어 두었던 책을 보다 지루하면 TV 채널을 돌려가며 문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두어 보기도 했으나 금새 시큰둥해 진다. 묵은 신문을 꺼내 펼쳐 보았다.

지면을 채운 소식들은 이미 내가 지나온 시간이어서 아날로그 방송을 듣는 듯 아득하다. 지나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 들 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과 온몸으로 휘둘렸던 시간에 작은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커피를 내리려다 말고 타운센터로 나가 한 잔 사 마시기로 했다. 커피 한잔 들고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기웃거리는것도 참 오랫만 인 듯 싶었다 그런데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중국식 부페 식당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가 잊고 있던 허기를 깨웠다. 평소 잘 먹지 않던 음식까지 골고루 맛보며 모처럼 포만감을 느껴보는것도 즐거웠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낡은 수레에서 꽃을 팔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수레의 꽃을 보고서야 내일이 ‘Mother’s Day’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 날을 앞두고 꽃을 팔고 있는 여인 앞에 섰다. 삶에 지칠대로 지친 그녀에게 돈을 건내고 꽃을 한 묶음 받아 들었다.?그녀는?‘ Thank you’ 라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에게 받아 든 꽃을 건냈다.?

그리고 다시 한 묶음의 꽃 값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던 지친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 나왔다. 꽃보다 고운 웃음이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 하시던 어머니가 그리운 날이었다.빈 식탁 위에 꽃을 꽂아 두고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어릴적 기억으로 달려가는 나를 붙잡지 않기로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계시고, 그런 날이면 어머니 방에서 분냄새가 났다. 돌아가면 위로 받을 수 있고, 그래서 늘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어머니의 분 냄새가 있는집, 그것은 내가 느끼는 영원한 모성이었다. 백팔배를 드리며 훈장처럼 새겨진 멍든 무릎이 나를 키웠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오월의 어머니 날이 오면 더 그립고 거기에 어머니의 기일까지 겹치면 눈물겹다. 이 지상에서?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고작해야 몇 줄 안되는 사모곡과 카네이션일 뿐이지만 순례의 길과 다르지 않았을 그분의 모성을 아프게 기억하기로 한다.

아내의 서랍장 왼쪽 한 구석에는 어머니가 평생 간직했던 염주가 있다. 천주교 신자인 아내는 염주 대신 늘 묵주를 끼고 있지만 어머니의 염주를 버리지 않고 한구석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늘 고마웠다.

어머니가 자신의 몸보다 귀하게 생각했던 염주가 어떻게 아내의 설합장에 와 있게 되었는지도,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묵주 옆자리에 어머니의 염주를 놓아 둔 이유도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모성이 모성으로 이어지는 순례같은 운명, 오직 하나의 염원이 세대를 건너 염주에서 묵주로 모양을 바꾸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어머니날이 되면 나의 두 아이들도 문 밖에서부터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 설 것이다. 그 아이들이 느끼고 기억하게 될 모성은 어떤 모양일지 모르지만 내 아이들도 기억할 것이다. 돌아오면 위로 받을 수 있고 그래서 늘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엄마 품이라는 것을…..!!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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