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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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가정

2017-05-24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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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 맑고 신선한 공기, 사방에 온갖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 답게 화사하고 찬란한 5월, 사랑과 따뜻함의 상징인 어린이 날, 어머니날, 스승의 날 등을 보내면서 어느 누가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에게 놓인 환경이 아무리 척박하고 초라하더라도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면 근심과 걱정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금세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을 굳건히 지탱해주는 행복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의 구성원이 저녁시간 만이라도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며 오손도손 마음을 나눈다면 이것이야말로 소소한 행복이고 건강한 삶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지상파 채널이 방영하는 메인 뉴스 프로그램 NBC Night News, CBS Evenning News, ABC World News 등은 모두 저녁 6시30분에 시작한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시간대를 겨냥한 것이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저녁이 있는, 식탁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함으로써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원동력과 창의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일주일에 5회 정도는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공무가 바쁘다 보니 일주일에 2회까지는 놓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에서 라고 한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는 주로 딸의 숙제를 돕는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가정에서 나오는 화기애애하고 아름다운 전경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인들은 일주일에 몇 회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저녁시간을 보낼까. 한국이나 여기나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의 성실함과 근면성을 칭찬한다. 하지만 저녁시간도 마다하고 죽기 살기로 일하는 습관적인 일벌레 같은 삶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한국정부가 직장에 ‘칼 퇴근제’ 도입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일찍이 퇴근해 가족들과 같이 지내야 가정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 속에서 힘을 얻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아 다음날도 일이 잘 된다는 뜻이다.

한인들은 대부분 돈만 벌어 경제적으로 빨리 자리 잡겠다는 욕심으로 하루 종일 일에만 치중한다. 그러다보니 피곤한 저녁시간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지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결과 부부사이에 금이 가면서 이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한 가정상담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갈수록 이혼문제 상담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예전엔 전체상담의 10% 정도이던 이혼상담이 지금은 세배가 훨씬 넘는 35%이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 가출 청소년, 갈 곳 없어 방황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민 온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행복해 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행복과는 거리가 먼 돈벌이에만 치중해 왔다는 방증이다. 행복의 잣대를 거창하게 둘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

저녁이 있는 가정, 저녁이 있는 삶은 꼭 가정의 달에만 강조돼야 할 일이 아니다. 일년 내내 이루어져야 가정이 온전히 설 수 있고 그런 가정만이 팍팍하고 힘든 이민생활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위인들의 명언에 나와 있다. 중국의 고사성어에는 ‘집안이 안정돼야 나라도 잘 다스리고 천하도 평정 할 수 있다’는 의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와 유사한 뜻으로 인도에는 ‘가정에서 마음이 평화로우면 어느 마을에 가서도 축제처럼 즐거운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속담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독일 문화계의 거장 카타리나 베히슈타인의 말은 저녁이 있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명언이다. “저녁 무렵 자연스럽게 가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가정의 행복을 맛보고 인생의 햇볕을 쬐는 사람이다. 그는 그 빛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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