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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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장의 플라스틱 봉지

2017-05-23 (화)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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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세상이 시끄럽다. 화사한 5월이어야 하는데 날씨마저 춥고 우중충하다. 최순실 박근혜 사건은 어디 먼 시골에서 벌어진 아줌마들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미국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트럼프와 러시아, FBI 디렉터의 영화 속에서나 벌어질 듯한 일들이 연일 브레이킹 뉴스로 나타나는 가운데, 반 모슬림을 내세우면서 이슬람 국가를 방문하고 있는 트럼프의 트럼프답지 않은 연설 모습……. 세상이 어찌 돌아갈지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며칠 전 새로 오픈한 한국 식품점에 들렸다가,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는 플라스틱 봉지를 보면서 또 트럼프가 생각났다. 환경오염 문제에서 조차 트럼프는 나의 생각을 거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로 벌어지는 정치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는 것이 환경문제가 아닌가 한다.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한참 뒤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최근에 연료문제 등 환경보호정책에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미국이 오히려 뒤떨어질 것 같은 우려가 든다. 오바마의 기후변화 정책에 반하여 트럼프가 에너지 개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송유관을 부활시킨 것은 그가 만들려는 멕시코 장벽만큼이나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매일 뉴스를 보면서 화를 내고 욕을 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내가 나서서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것이 바로 엄청나게 허비되고 있는 플라스틱 봉지를 보면서였다.

딱히 필요한 것이 없지만 새로 오픈했다니 궁금해서 구경을 간 수퍼마켓에서 세일하는 품목이나 눈에 띄는 물건들을 주어 담았다. 늦은 저녁이라 한가한 계산대에는 중국 사람으로 보이는 캐셔 여자와 물건을 담아주는 스페니쉬 같은 여자가 있었다. 돈 계산을 하고 보니 카트에는 플라스틱 봉지가 산더미다.

봉지 하나에 물건이 하나 씩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안전하게 잘 들어있는 계란 한 박스를 플라스틱 봉지 두 개를 겹쳐 담았다. 다 음 번에 한국 식품점에 가서는 물건을 담을 때는 내가 나서야겠다. 별로 훈련을 받지 못해 보이는 수퍼마켓 직원들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소비자인 내가 먼저 신경을 써야한다는 생각이다. 하긴 지구의 문제는 우리 인간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종교인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의 자손들이 살 지구를 트럼프나 수퍼마켓 종업원을 훈련시키지 않는 주인에게 불평하지 말고, 캐셔가 물건 담을 때 일일이 참견해야겠다. 시끄러운 트럼프 시대에 나는 조용히 플라스틱 봉지 한 장을 아껴야겠다.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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