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바람과 가을 서리

2017-05-22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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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골프 즐기기 참 좋은 계절이다. 골프는 동반자가 중요하다. 동반자의 분위기와 성격은 그날의 실력발휘를 좌우한다, 스코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추어 주말골퍼면 더욱 그렇다. 골퍼들에게 동반라운드를 하기 싫은 사람이 한둘씩 있는 이유다.

한 사람의 성격과 인격을 파악하는 데는 골프 한 라운드면 충분하다. 그래서 즐겁게 치고 분위기를 이끄는 동반자는 언제나 환영이다. 자기 밖에 모르는 동반자는 사절이다. 이름만 들어도 샷이 망가지는 동반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원히 아웃이다. 골프는 꼭 좋은 스코어에서만 기쁨을 얻는 것은 아니다. 참 즐겁게 쳤으면 더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골프 라운딩을 하다보면 다양한 동반자를 만난다. 언제나 동반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골퍼가 있다. 남이 규칙을 어기면 눈감아주고 자신이 어겼을 때는 벌 타를 적용하는 골퍼도 있다. 수시로 멀리건과 넉넉한 컨시드를 주는 골퍼도 있다. 심지어 벌 타 없이 볼을 옮겨 놓고 칠 기회를 제공하는 골퍼도 있다. 샷 이후에 굿 샷, 나이스 샷의 환호를 아끼지 않는 골퍼도 있다.


그런가하면 심술궂은 골퍼들도 있다. ‘동반자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골퍼다. 그런 골퍼는 공이 러프로 들어가면 같이 찾아주는 법이 없다. 동반자가 실수하면 쾌재를 부른다. 동반자가 멋진 샷을 하면 칭찬을 하지만 얼굴 표정은 딴판이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졸장부 짓을 하기 일쑤다. 앞 팀플레이가 좀 늦다고 고성으로 욕을 하다 폭력사태의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때문에 골프의 진정한 맛은 마음이 맞는 친구나 지인들끼리 할 때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동반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골프를 즐겁게 치고,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동반자에게는 여유 있고 배려하면 좋은 동반자다. 그래서 혹자는 골퍼의 행복은 성적, 재산, 핸디캡의 순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드에서의 행복은 바로 마음 맞는 동반자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거리 늘리고, 타수 줄이려는 욕심을 버리고 좋은 동반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스스로가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한 노력도 당연한 일이다. 한인 골퍼들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골프 매너를 갖추는 것이 필수인 이유다.

춘풍추상(春風秋霜). 봄바람과 가을서리. 춘풍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는 뜻이다. 추상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엄하게 한다는 의미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환초도인 홍자성의 어록인 채근담에 실린 글귀다. 이 성어는 원래 채근담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문구의 줄임말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릿바람처럼 엄하게 하라는 뜻이다. 한인 골퍼들이 참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해 꼭 지켜야할 교훈인 셈이다.

골퍼뿐만 아니다. 한인 모두가 실천해야할 삶의 지침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히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게 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대부분은 모든 과실은 남의 탓으로 잘 돌린다. 자기의 잘못은 곧잘 합리화 시킨다. 자기 자신의 실수엔 너그러우면서 남의 실수엔 비난을 퍼붓기 일쑤다. 자기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무조건 ‘내 탓이다’가 아닌 ‘네 탓이다’로 사는 사람들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지극히 관대하게 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타인의 행동은 다르게 여긴다. 옳고 그름을 다 헤아리지 못한 채 판정을 한다. 심지어 똑 같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의 하면 불륜’이라 생각한다. 나를 대할 때와 남을 대할 때의 잣대가 다른 것이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우를 범하면서 사는 이들은 수두룩하다.

춘풍추상.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하라고 했다. 자기 합리화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글귀가 아닌가 싶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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