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인지 생시인지?

2017-05-19 (금) 김갑헌 맨체스터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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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돌아간 친구의 꿈을 깨고 나니 세상이 새로워 보인다. 너무도 생생한 꿈은 꿈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자 (莊子)의 “나비의 꿈”을 떠올렸다. 호접몽(蝴蝶夢)으로 알려진 이 장자의 우화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꿈을 깨어나니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장자의 관점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구분이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만물의 변화 속에서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점 일 것 이다. 장자의 나비 꿈은 나비의 장자 꿈과 차이가 없다는 뜻일 것 이다.

지난밤의 꿈은 여러해 전에 사고로 돌아간 친구에 대한 꿈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존경받는 치과의사로 이웃과 사회에 많은 봉사를 하던 친구였다. 몇 년 전 일이다. 한국도 이제는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고등학교 동기동창회를 LA에서 한다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 했다.


호텔 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별로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웬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생각하며 서성거리는데,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한 분이 다가오더니 나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한참 바라보니 알아 볼 수 없이 변한 얼굴 속에 옛날의 어린 얼굴이 서서히 떠올랐다.

로비를 가득채운 사람들이 바로 나의 동기동창생들이었다. 서울에서 막 도착한 이들이 전해 주는 것은 어제 무너진 삼풍백화점에 나와 친했던 그 꿈속의 친구가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일학년 시절 철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은 “너희들이 명철한 두뇌를 가졌다고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러면 지금 너희들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 해보라”는 논리적 도전을 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지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 할 수 없었다.

우리를 지나치게 논리의 구조 속에 묶어두는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과 함께 동양인의 포괄적인 사고와 서양인들의 분석적인 사고의 장단점을 교수님은 지적한 것이지만, 그 시간 이후 나는 사물의 본질과 현상이라는 철학명제에서 떠나본 일이 없다. 인생은 시간 속에 펼쳐지는 한 현상에 불과한 것이요 그 시간이 다하면 궁극적 본질인 영적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믿음이다.

유물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포함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원자와 분자의 이합집산의 결과일 뿐, 궁극적으로 보면 인생의 의미라는 것도 별 것이 아니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사상의 뒤 안에는 우리의 삶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삶과 죽음의 구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강박 관념이 인생의 가치와 보람,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 아닐까?

꿈에 본 친구는 내가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도봉산 인수봉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해 대학병원에 입원한 나를 보고 “너는 예수를 믿는 눔이 천당 가기는 싫은 모양이지? 다 죽다 살았어. 왜 바위는 기어오르는 거야? 거기에 천당 문이라도 있냐?”라며 너털웃음을 웃던 그였다.

그는 먼저 갔다. 그 친구를 꿈속에서 보며 한 말이 또렷했다. 네가 나를 꿈속에 보는 것이냐, 내가 너를 꿈속에 보는 것이냐? 충담사가 지은 향가 찬기파랑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올시, 수풀이여 …”옆에 누운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을 깨었다.

<김갑헌 맨체스터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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