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체면과 의식

2017-05-13 (토) 이경림/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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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처음 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이 있다면 미국인들이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더운 한 여름에도 두터운 겨울옷을 걸치고 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적으로도 자유의 나라이지만 개인 하나 하나의 내적인 자유 또한 세계 제일인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내적인 자유를 잃는다. 남의 시선은 그 알량한 체면 때문이다.

얼마나 고상한 체면을 갖고 있는 한국인인줄 몰라도 한국인이 절대로 일등 국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느끼고도 남는데, 일등 국민도 갖지 않는 체면 유지를 2등 아니면 3등 국민인 우리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체면 유지를 한다는 게 주제파악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체면을 중시하고 체면에 집착하면 체면이라는 오랏줄이 묶인 삶을 살게 된다. 그 놈의 체면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자유마저 잃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인은 남의 시선을 굉장히 존중하는 문화권에서 성장한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자꾸 매이게 되고 그러다보니 내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남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노력하며 내 행복이 아닌 남의 행복을 살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되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내 자신이 제일 잘났다는 게 아니고 유유자적하게 눈치 안보여 자유를 누리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는 어느 종교의 얘기일 것이다.

여럿이서 출가하여 삭발하고 수도를 시작한 한 스님의 얘기 하나 들어보자. 수도를 시작해 몇 년이 흘러갔다. 벌써 거의 모든 이들이 깨우쳐 득도의 경지에 달했는데 한 스님은 십년이 흘러도 득도는커녕 고민만 커져갔다. 옆에서 수도를 쌓는 동료들을 훔쳐보며 자신을 비교하며 하루하루를 넘겼으나 자신에게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미 득도한 동료 스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밤잠도 잘 못 이루니 얼굴은 수척해지고 수도 정진의 기력도 점차 잃어갔다.

생각하다 못해 이 스님은 유명한 고승을 찾아 나선다. 어렵스리 만나 독대한 고승이 이 스님에게 자기를 찾아온 연유를 물으니 이 스님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다 들은 고승은 조용히 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자기 앞에 놓은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한다. 꺼내놓을 것이 없는 이 스님은 그때서야 무릎을 치며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고사 이야기기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착각한 어떤 스님의 깨달음의 의미가 주제가 되겠으나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수도를 쌓는 스님의 실패담 또한 다른 의미를 줄 것이다.

<이경림/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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