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업친데 덮친격”

2017-05-09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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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미대륙의 노예제도는 1619년, 네덜란드인들이 아프리카 원주민 20명 을 납치해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에 정착시키며서부터 시작되었다.

담배농사에 저임금인력이 필요했던 때에 해결책이 되어 그후로 수많은 노예가 납치되어와 노예시장에서 팔려갔는데 담배 농사가 18세기 말에 어려워지고 영국에서는 순면을 필요로 하면서 남부지방에서 목화재배가 시작되었다.

목화섬을 일일이 손으로 따야하는 노동을 맡은 그들이 받은 수난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겠으나 신생국의 경제기반을 닦는데 에는 대단한 기여를 한 셈이다. 1808년 법적으로 노예수입이 금지되었으나, 노예시장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졌고 1860년에는 4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예들이 있었다.


노예소유자들은 그들이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의존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하여 글을 배우는 것을 금지하 고, 복종을 잘하는 노예에게는 대우를 잘해주고 그들간에도 상하층의 계급을 만들어주어 서로를 불신하게 하여 주인에게 대들지 못하도록 방비하였다. 그들을 결혼시켜 많은 아이들을 낳도록 장려하여 노동력 을 늘려갔으나 이들의 결혼은 법적 인 구속력이 없어 주인의 필요에 따라 가족들이 나누어져 팔려가는 비 정한 처사는 예사였다.

여성노예들은 더욱 비참했다. 고된 노동이외에도 주인의 재산을 늘 리는 수단으로 출산율이 많을수록 보상을 해주며, 업친데 덥친격으로 농장 주인이나 주인의 아들이 이들 을 성폭력하고 강간하는 것은 공공 연한 비밀이었다. 남편이외의 남성 노예들까지도 동원하여 최대한 다수의 아기를 출산케하는 짐승사육 수준의 잔인하고 비참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된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250여년간을 생존해 왔던 흑인들은 노예제도가 법적으 로 폐지된지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문화에 엄마, 아빠 그리 고 자녀들이 한 가족을 이루는 그림이 흔하지 않은 것은 남성은 여성 을 임신시키기만 하고 여성은 출산 하고 자녀를 키우도록 그들의 조상 들에게 강요되었던 치명적인 역사 가 전통이 되어 세습되어 온 결과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지금까 지도 지속되고 있는 철두철미한 제 도적인 인종차별은 너무나 많은 역 사적 실례가 대변하여 주듯이 그들 의 의무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그 로 인하여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며 경제적인 성장과 안정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서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 할 수밖에 없도록 눈에 보이지 않 는 사슬로 그들을 계속해서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막힌 인종차별제도 의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괄목할 것은 짐승취급을 했던 흑인남성들에게는 1876년에 참정권이 주어졌는데, 백인이나 흑인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들에게는 무려 44년 뒤인 1920 년에야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사실 이다. 이 확연한 성차별은 인권을 무시 당한 흑인들보다도 여성을 더 낮게 취급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이다.

더구나 참정권이 주어진 지 거의 1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 로 여성 대통령 후보가 태어났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성차별이 성행한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여성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임을 인식하지 못한 이들이 대다수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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