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기’의 허와 실

2017-05-06 (토)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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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쥐나 고양이, 아니면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들 앞에서까지 맨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조물주는 세상 모든 생명체와 자연의 생태계와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라는 미션(Mission)을 선포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엄청난 지상명령을 억겹의 시간 안에서 사람은 다스리는 권좌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영’적 ‘혼’적 세계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뇌)는 무려 1,000억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스카와 티슈(Scar & tissue)들로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와 활용되고 싶어 한다는 어느 전문가의 말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태어나고 죽어갈 동안 그 무궁무진한 뇌 속의 비밀한 초능력의 힘은 각 사람에게 과연 몇 퍼센트나 사용 할 수 있었을까.


잉태된 아기의 발아되는 시작은 뇌의 구조부터이다. 생명을 인지하고 존재성을 감지하는 뇌 속의 세포줄기들이 하나하나 생성되면서 육체적 기능을 위한 형상들이 만들어진다. 태아의 아기는 듣고 느끼고 기억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먹고 배설 할 줄 아는 하나의 인격체로 9개월 동안 태중에서 세상 밖의 삶, 자체로 머물고 있다.

아기는 태어난 순간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응 한다는 것은 증빙된 사실이다. “아기가 뭘 안다고?” 이 말은 어른들의 무지한 말이다. 저들은 태중에서 단련된 오감을 통해 시, 청, 각의 촉수를 세우고 미로와 같은 우주속으로 뛰어들어 우주의 신비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다.

아기에게 연필을 쥐어준다. 꼭 잡는 힘은 아주 강하다. 흰 종이를 들고 아기의 시야에 눈높이를 맞추어 보자. 신기하게 그 백지를 향해 아기는 연필을 마구 휘두른다. 두발을 춤을 추듯 흔들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기의 표정은 보통때와 완전히 다르다. 얼굴은 표현키 어려운 생기와 기쁨이 가득하게 변하면서 가만히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 행위는 아기의 숨겨진 뇌의 세포를 아주 일찍부터 건드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 유아기를 유기하지 않고 키운 아기들은 유년기나 사춘기나 아니 청년기까지 자기만의 의지가 뚜렷한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열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말이다. 영, 유아기를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자는 말이다.

지금은 태어날 때부터 아기들이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최첨단 과학과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는 듯하다. 한 세기의 주역들을 무엇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힘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초자연적 영적 능력자가 ‘만물의 영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 유아가기를 지나고 유년기 그리기 과정은 사물을 형체로 표현하려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럴 때 엄마들은 위험해진다. ‘미술공부를 시키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학부모 사이에 퍼지고 있는 상식이 그것이다. 그리기를 가르친다? 무엇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

“자, 구름은 이렇게 그리고 해는 여기에 그리고 산과 나무는 이곳에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오히려 그리기의 독이 될 뿐이다. ‘그리기’는 ‘음악’이나 ‘작문’법과는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한 별개의 것이다. 이것은 전공하고는 상관없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의 본능적 발상이라는 생각부터 바꾸면 그만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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