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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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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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문화’ 마지막 보루 정복한 여성 사냥꾼들

“내 손으로 총 쏘아 잡고, 손질하고, 요리한다”

“식량이란 냉장고가 아닌 자연에서 나오는 것”


<사진설명>

■자연 - 숲 속 망루에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리네 릴레보 오스포스. 그녀에게 사냥은 ‘명상’이기도 하다.

■사냥감 - 무스 같은 큰 동물을 사냥하러 나갈 때는 특히 남성들의 세계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도전 - 안네-메테 키르케모는 자동차에 친 사슴의 사체처리가 “힘든 일이긴 하다”고 인정했다.

남녀평등 지수가 세계 1위라는 노르웨이에서도 사냥은 마초 남성문화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여성 사냥꾼이 60%나 증가, 노르웨이 전체 헌터의 12%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시골과 먹이사슬에 대해 늘어난 관심을 증명하고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누비며 사냥을 하고 잡은 노루의 껍질을 벗겨 직접 요리도 하는 여성 헌터 스티네 하그벨드트 비달(33)은 “여섯 살짜리 내 딸에게 식량이란 냉장고가 아닌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고유’ 영역으로 들어오는 여성들을 남성들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비달은 전한다. 여전히 사격장에선 ‘가르치려드는’ 남성들과 자주 부딪치지만 별 문제는 아니다.


“난 ‘날 가르치려 들기 전에 입 다물고 내가 어떻게 총을 쏘는지를 먼저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사냥협회도 여성회원 확대를 위해 여성 헌터만을 위한 행사나 모임을 마련하는 등 여성들의 사냥을 장려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총기로 사냥을 하려면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요즘 시험을 보는 4명 중 한 명은 여성이다. 여성 전용 헌팅 클럽도 생겼고 상당수 일반 헌팅 클럽도 여성만의 그룹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 전국 19개 지부의 대표들이 모여 여성 헌팅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한다. 헌팅 매가진 ‘야크트 & 피스크’의 편집장 올레 키르케모(61)는 지난 20년 동안 여성 헌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면서 “독립적이며 자수성가한 새 세대 여성들은 남성들이 하는 모든 것을 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사냥에 대한 깊은 관심이 노르웨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유럽사냥협회는 유럽의 헌팅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여성들이 급증하면서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보호하는 추세도 강해졌다고 전한다.

물론 헌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는 않다. 동물보호협회는 동물복지와 전체 자연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헌팅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의 여성 헌터들은 자신들이 자연에 해가 된다는 생각에 정면 반대를 표했다. “난 채식주의자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고기를 먹으면서 나의 사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존중 하지 않는다”고 리네 릴레보 오스포스(45)는 말했다.

그녀에게 사냥은 지연과의 교감이다. 강하게 눈을 찌르는 겨울 햇빛 속에서 한 시간 넘게 눈앞의 풍경만을 응시하며 기다리고 있노라면 들리는 것은 먼 곳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뿐이다. 그녀가 나가는 사냥 길의 절반이 그렇듯이 사냥감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타입이라면 사냥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히 앉아 릴랙스하며 주위의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겐 사냥은 거의 완벽하다. 일종의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오스포스는 노르웨이어 교사로 일하며 2007년 헌팅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후에 여성 헌터와 신참 남성 헌터들에게 무스(북미 산 큰 사슴) 사냥을 지도하는 오슬로 지역단체에 접촉했다.

“노르웨이에서의 사냥은 옛날부터 완전 남성 주도의 전통이었다. 아버지나 삼촌 등 집안 남자들이 사양을 하지 않는 가정의 남성들에게도 합류하기 힘든 것이 사냥의 세계였다”고 그는 말했다.

여성의 헌팅 열기는 마초 행동을 따라하고 싶은 서가 아니다. 자연 및 식량과의 유대라는 것이다. “난 총을 쏘아 동물을 잡고 손질하고 요리한다. 가공 육류산업이 아닌 친 환경적 식량 조달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30년 전 처음 사냥 클럽에 가입했던 안네-매네트 키르케모(50)는 전에 비해 많은 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당시 그녀는 운영위원이 되고 새 사냥은 강사가 될 만큼 경험이 충분했지만 남자들이 사슴 사냥을 나갈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자신도 가도 되느냐고 물으면 흔히 “정말 데려 가고 싶다. 그런데 내 아내가 싫어할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키르케모는 사슴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 경찰을 도와 하이웨이에서 부상당한 동물들을 추적해 처리하는 일까지 맡아하고 있다. 그녀가 죽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고 내장을 제거하고 고기로 손질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아직 대부분의 여성 사냥꾼들은 자신의 능력이 남성 못지않다는 걸 증명하느라 애쓰지만 이미 30여 마리의 사체를 거뜬히 처리해낸 키르케모는 그럴 필요가 없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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