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랏일 할 사람

2017-05-0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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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선을 앞두고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이 장밋빛 공약을 약속하며 쏟아지는 말들이 넘치고 넘쳐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사람들의 발을 적시고 바지가랑이를 적셔 온몸으로 젖어온다.

이 말의 홍수 속에 가려서 쓸 말은 하나도 없는 것이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세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방하며 상처를 주는 험한 칼날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나무라지 말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될 것인데 남의 명예를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명예도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아무리 립 서비스의 가치는 크다지만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는 안된다. 국민의 입장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또 말은 가슴에 대고 하라고 했다. 자신의 입에서 떠난 말은 책임이 따라붙는다.


편견과 혐오에 찬 독설은 무섭고 이기적이다. 돌아다니는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은 것이 극우와 극좌이다. 이 말이야말로 서로 베고 베이는 칼날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킨다.

원래 좌파, 우파라는 말의 어원은 프랑스 혁명으로 유래됐다. 당시 의회에서 모임을 가질 때 과격파 의원은 왼쪽, 온건파 의원은 오른쪽에 모여앉아 이 말이 시작되었다. 공산당이 극좌파적인 모습이라면 파시즘은 극우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공산당도 망했지만 세계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 군국주의 일본, 파시즘의 이탈리아, 이들은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행동에 나섰다가 모두 망했다. 해방이후의 한국 정치도 그랬다.

이 시대상황을 잘 다룬 소설로 최인훈의 ‘광장’이 있다. 1960년 4.19이후 발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타락하고 방종한 시대의 남한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찾아 월북했더니 그곳은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명령과 복종만 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남과 북이 아닌 자신의 진정한 광장을 찾아 제3국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그러나 도중에 바다로 뛰어들고 만다. 순간 독자들은 가슴을 관통하는 비애를 느끼는 것이 그 심정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권력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리고 춤을 추는 이들을 비난한 생각은 없다. 정치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옛글이나 그림에 자주 소개되는 허유와 소부라는 인물이 있다. 고대중국 요가 다스리는 태평성대에 이들은 심산유곡에 숨어살며 고결한 인품을 유지했다. 요는 허유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자 했다. 이 뜻을 전해들은 허유는 곧바로 강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듣고싶지 않은 말을 들어 귀를 더렵혔다는 것. 흐르는 물로 귀를 씻는 것을 본 소부는 더했다.

소를 몰고 가던 그는 물을 먹으려는 소의 고삐를 틀어쥐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 더러운 말을 들은 귀를 씻은 물은 더러워 소의 입까지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이다.

속세의 출세나 높은 지위를 거부한 두 사람의 처신이 훌륭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정치가 더럽고 역겹다고 한다면 나랏일은 누가 하나. 정치로 많은 이를 이롭게 하고 나라에 공을 세우는 선한 사람도 있어야한다.

인조반정후 이조좌랑에 임명된 문신 조익이 있다. 오늘날 장관직인 그는 집 한 채 말 한 필도 없었다. 그런 빈곤이 백성의 현실을 잘 알게 했고 민생에 도움이 되는 대동법을 적극 실행케 했다.

그는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려고 기우제를 지내고 남은 고기 몇 점을 집에 싸들고 간 뒤 나중에 참회하는 글을 지었다. “얻어도 되는 것은 얻지 못할지언정 얻어서 안되는 것을 얻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반대세력이 있고 정책이 좋다하여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조익은 대동법 반대파의 의견도 수렴했다. 나라에는 대통령과 그를 보필하며 구체적인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정치인과 관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5월9일 새대통령이 선출되고 새정부에 들어가는 이들이 조익과 같이 청렴하고 인정 있으며 상식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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