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대한민국

2017-05-04 (목) 하명훈/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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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전 4월30일, 뉴욕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한 모텔에서 TV뉴스를 통해 사이공이 함락되는 광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분루를 삼키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미국으로 이민 온지 15일째 직장도 없이 모텔에서 처자식과 함께 임시 거주를 하고 있던 처지라 월남이 망한다고 해서 분노나 혹 슬프다고 느낄만한 심적인 여유가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즉 내 코가 석자인데 옆을 쳐다본다는 것은 굉장한 사치가 아닐까?

월남 패망 3-4년 후에 조각배로 월남을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의사들을 뉴욕에서 만났다. 그들은 1,000만명의 보트 피플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세월이 꽤 흘러갔으니 지금쯤은 조국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 짝사랑도 이쯤이면 병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국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도, 또 내게 관심도 없을 테니까.

작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대통령을 걱정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임을 믿는 진정한 한국의 보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후 나는 소위 최순실 청문회, 국회 대정부 청문회 등의 실황중계나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하여 그동안 입소문들을 확인하고 이게 내 조국의 국회냐고 외치고 싶다.


법적 정당성과 그 절차상에 하자가 있다는 탄핵소추안, 헌재의 이상스런 대통령 파면(소추안 인용이나 기각이 아닌) 그리고 구속, 그 다음은 전광석화와 같은 선거전 돌입,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였다.

정권쟁취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돌격 아니면 죽는다, 불태운다 이런 식이다. 광우병 괴담으로 대국민 사기를 치고도, 아니면 말고 식의 저질의 선동과 비열한 공작정치, 무너진 공교육, 편파 내지 거짓언론에 세뇌된 독자들, 여론조사꾼들의 조작, 썩은 법조계, 탐욕스런 보수 그리고 황제적인 국회, 무능한 정부, 공권력은 있으나 마나 등등 법치주의가 그 기능을 상실한 내 조국의 모습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법치주의는 정치적 판단의 한 수 아래이며 정치적 패배는 그 사회의 보편적인 선을 상실하게 된다”를 수긍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대세인 것을… 그래서 대선 결사반대 집회를 않는 것인가?

처음에는 벚꽃대선이라 했다가 이제는 장미대선이라 하는 이번 선거는 그렇게 꽃처럼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으니 괜시리 꽃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자, 꽃들은 죽기 살기로 대결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아름답다. 자유민주주의과 군중민주주의의 대결, 즉 이념의 대결이니까 색깔선거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색깔론”이냐고 면박을 준다.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 칼 마르크스가 들어 올린 붉은 깃발을 소련연방이 해체된 후에도 여전히 보호색으로 위장하여 거리를 활보하며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는가?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어쩌랴, 이번 대선을 끝으로 보수는 진정한 보수로, 그리고 진보도 진정한 진보로 태어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저 청송처럼 늘 푸르기를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은 영원한 희망이니까. 그리고 행여 한국에서 조각배로 탈출한 의사들을 훗날 뉴욕에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우기로 했다.

<하명훈/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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