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능한 한국외교

2017-05-03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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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가 융성 발전하려면 지도자의 뛰어난 자질은 물론, 나라간 협상 외교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중에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라가 일본과 중국이 아닐까.

일본은 아베 총리가 2년전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자국이 전범 국가라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없이 면죄부를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아베는 자신감에 넘쳐 의회에서 ‘자위대도 군대다‘ 라고 하면서 무력사용에 대한 속내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또 도널드 트럼프 취임즉시 곧바로 뉴욕으로 달려와 트럼프와 회담을 갖고 미일 동맹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주일미군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나섰다. 이것이 발 빠른 일본식 외교의 한 단면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창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글로벌 경제, 외교 전략이다. 예를 들어 21세기 해상구축에 보다 많은 공을 들이면서 특히 한국과 일본 및 러시아 극동지역을 거쳐 북미까지 연결되는 경제정책을 개발 중이다.


반면, 한국은 한동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를 놓고 온 국민이 ‘배치돼야 한다’ ‘안 된다’로 갈라져 시끌벅적하더니 얼마 전 갑자기 예정된 부지 경북 성주로 사드장비가 반입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상당히 놀라웠다. 국민들도 미처 모르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일어난 일이고 보니 일반 국민은 물론, 성주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더 문제는 미국이 사드배치 비용을 한국이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 10억 달러, 한화로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내야 한다고 하는 점이다. 사드장비 운영 및 유지는 미국이, 부지 및 기반시설은 한국이 각각 부담키로 기존 합의사항,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미국의 사드비용 지불 요구에 관한 문서가 이미 지난해 말 한국정부에 보내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를 덮어놓은 채 일단 사드배치부터 서둘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은 사드배치를 중국의 엄청난 경제적 보복을 무릅쓰고 진행해 왔는데 이제 와서 미국이 이런 막대한 금액을 부담하라니... 한국을 얼마나 경시했으면 이런 자세로 나오는지 한국의 허약한 외교력에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ICBM)이 눈앞에 다가온 현실에서 이런 한심한 외교력으로 어떻게 이에 대처 할 수 있을지... 한반도 주변 강국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당선되는 한국의 대통령은 모든 면에서도 탁월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국가간 외교협상에서 탁월한 수완을 지닌 자라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도자의 외교협상 능력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던 병자호란(인조 14년)이 이를 잘 상기시켜 준다. 명나라가 임진왜란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명 황제는 폐위전의 광해군에게 군신관계를 강요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명나라의 혼란을 틈타 일어난 후금(훗날 청나라)의 힘이 명보다 앞선다는 것을 알고 청과 명 사이에서 펼쳐오던 중립외교를 중단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을 쓰다 결국 후금의 화를 얻어 침략을 당한다. 그 결과 왕이 청 황제에게 절하는 ‘삼배구고두’ 치욕을 당하고, 공녀와 재물을 헌납해야 했으며 전국토가 황폐화되는 변을 당했다. 전적으로 지도자의 무능한 외교에서 비롯된 결과다. 36년간 일본에게 철저히 지배당한 한국의 식민지 역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가간 관계에서 외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의 핵으로 실리적인 이익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입지적인 요건을 갖고 있다. 지금처럼 미국에 끌려가고 중국에게 휘둘리고 일본의 야만성에 놀아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나라의 대통령이 강국의 지도자 앞에 삼배구고두 할 날이 없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나라를 강건하게 지킬 지도자가 누구인가. 국가의 명운을 가를 5월9일 선택의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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