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데릴라의 유혹과 삼손의 힘

2017-05-02 (화) 장설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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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한국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에 남달리 호감이 갔다. 수줍은 듯 침착한 안정성, 저질적인 기성정치에 감염되지 않은 순수함이 엿보여서다. 살펴보니 안 후보의 학력과 경력, 또 무엇보다 사회공헌 업적이 대단했다. 과학자 대학교수가 우리나라 재산인 과학기술의 첨단의 발명과 더불어 벤처 산업에서 큰 돈 벌고 나서, 이제 정치에 뛰어 들었단다. 자기 열정을 기울인 분야에서 모두 승승장구한 인물이 좀 부끄러운 듯이 대통령 하겠다는데 매력을 느꼈다.

헌데 이 안철수가 자기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건 대한민국 납자 입에서 나올 수 없는 혁명적 구호였다. 겉치레와 체면 뻘겋게 녹슨 구세대는 아연실색, 몸과 정신이 젊은이들에게는 달고 오묘한 발언이었다. 깊은 세계관과 자신 있는 자의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후보자들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어쩐지 별로 알고 싶은 동기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이민 50년 동안 한국계 미국인이라 행세하며 실다 보니 미국현지의 사회문제 정치가 중요했던 나의 정신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는 지난해 여름철 일이다.


이화여대 학생과 전 총장 간의 대결, 이대 운영자들의 무지한 행동, 학생들의 끈질긴 항거에 다시 열심히 한국 근대사를 밤낮 없이 공부해 봤다. 모교 이화여대 사건에 연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사건, 잇따른 탄핵, 파면과 수감 등의 극적인 상황을 눈물로 무기력하게 관망했다.

한 가지 눈에 잡힌 것은 우리가 이 나라의 거듭남을 살고 보고 있다는 말없는 계시였다. 그때 눈을 번쩍 뜨이게 나타난 인물이 안철수다. 그의 지지율이 전선을 달리던 문재인에 근접 하였을 때 마음은 “옳거니”를 연발했다.

그런데 상승 길에 있던 안 후보는 자기답지 않은 행동 음성을 만들어 내고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드디어는 기회주의적 저질 정치인들의 흉내를 내고 있지 않은가? 안철수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어지고, 촛불 민심 또한 안철수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여하 간에 차기 대통령은 문재인 아니면 안철수임은 분명한 것 같다. 아무튼 신뢰감은 여전히 안철수 쪽으로 향했다.

이제 며칠 후 한국 국민은 자기들의 장래를 맡길 인물을 재검토해 점찍을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일단 민심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거대한 물결의 물꼬를 그쪽으로 트여 줄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 바라건 데는 안철수가 주위의 권고, 무대 감독들의 의견에 자신의 정체성을 되살려 본연의 삶의 신조와 양심의 목소리 만 경청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정치현실에 부응(Politically Correct) 못하더라도, 누구나 자기의 음성만 낼 때 신뢰를 거둔다. ‘데릴라’의 유혹에 힘의 머리털을 잘라버려 천부의 위력을 탕진한 ‘삼손’을 기억 할 것이다.

합계하면 모두 영점이 되어버리는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의 구태의연한 과거의 방정식은 더 이상 효과가 없는 21세기 ‘윈윈 게임(Win Win Game)’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남이 나를 비방할 때 같은 수준의 반격하길 거부하고 “생각 잘 해보고 시정하도록 노력 하겠다”면 그만이다. 변명이나 자기 방어를 너무 길게 하면 그 문제가 더 부각될 뿐이다. 가해자를 존중하고 칭찬하는 태도는 공격의 화살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인간 사이의 유사점보다도 차이점이 세상을 발전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셨을까?

<장설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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