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다보면 먹고 사는 일 말고도 단지 피부가 노랗거나 갈색머리를 지닌 태생적 요건에 의해 차별 받거나 움츠리고 긴장하게 되는 일이 있다. 특히나 수년 전부터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다 하면 꼭 피해를 보는 한인업소들이 속출했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이슈가 대세였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래 반이민행정명령과 맞서 불법체류자 보호정책과 인권에 대한 이슈로 잠시 소강상태이다.
4월29일은 미주한인이민사에 가장 큰 피해와 상처를 준 LA흑인폭동 25주년이다. 1992년 4월29일부터 5월4일까지 LA 사우스센트럴 지역에서 시작된 흑인폭동은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1991년 3월3일 백인경찰 4명이 과속으로 질주한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했고 1년후 재판에서 경찰들이 모두 무죄방면 되자 분노한 흑인들이 폭력, 방화, 약탈을 자행했다. 행인이 찍은 로드니 킹 집단 폭행 동영상이 TV로 공개되고 1991년 흑인밀집지역 캠튼에서 한인마켓을 운영하던 두순자씨가 수차례 물건을 훔친 흑인소녀에게 몇 번을 맞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미 주류언론에 의해 부각되면서 불똥은 엉뚱하게도 한인에게로 튀었다.
그런데 정부와 경찰은 무책임하고 무관심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1세대와 2세대 한인들이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차로 대여섯시간 거리에 사는 한인들도 무기와 보급품을 싣고 달려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폭도들과 맞섰다.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폭동으로 사망자 53명, 부상자 4,000여명, 한인업소 2,300여곳 파손, 경제손실 10억달러 중 40%가 한인재산이었고 지금도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 받는 한인들도 무수하다.
한인들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고 절대로 미 주류사회나 언론이 우리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때 우리가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면 지금쯤 미 전역의 한인타운이란 존재는 미미하기 짝이 없고 지난 25년은 물론 앞으로도 늘 타인종의 타겟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부시대통령이 폭동 현장을 다녀갔음에도 불구, 한인사회 재건을 위한 대책 마련이 주어지지 않았고 우리를 대변할 목소리도 부족했다. 정치력 부재와 지역사회 무관심에 대해 반성한 한인은 유권자운동과 투표참여, 한인정치인 배출에 힘썼다.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수가 늘고 지역경찰서와 소통의 장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계 정치인은 극소수이고 백인 주류가 정치를 이끌어간다.
뉴욕한인 김대실 감독이 1992년 흑인폭동의 주요인이 미 건국때부터 있던 흑백 갈등임에도 한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으로 몰고간 불합리한 언론을 보고 우리 목소리를 내고자 1995년 만든 첫 번째 다큐영화가 ‘4.29’다. 폭동 10년이 된 2002년에는 폭동 2편인 ‘젖은 모래알’을 만들었다. 모래알은 마르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지만 젖은 모래알은 하나로 뭉쳐진다. 소수민족의 단결을 강조한다.
이번 25주년을 맞아 오스카상 수상자인 존 리들리 감독은 4.29 흑인폭동을 그린 2시간24분짜리 다큐영화 ‘렛잇폴(Let it fall)을 케이블과 영화관에서 상영한다. 미ABC방송 축약본 다큐라는데 바로 이 방송이 폭동당시 두순자 사건을 집중 보도한 메이저 방송 중 하나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여전히 주류사회의 반응이 신경 쓰인다. 이번에 다큐의 방향을 어디로 잡았을 지 걱정된다.
과거 폭동장면과 연계하여 약탈의 현장을 막고 물건을 훔쳐가는 이들을 설득하여 도로 갖다놓게 하는 흑인, 재건 현장에서 함께 도와주는 히스패닉, 불타버린 사업터에서 망연자실한 한인에게 물을 떠다주고 먹을 것을 챙겨준 타인종은 없었는 지, 소소하나 인간의 정이 흐르는 장면을 찾아낸 다큐는 없는지? 자신이 선택하여 살려고 온 땅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받기룰 원하는 인종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사람으로 살고 대접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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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