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의와 심의

2017-04-29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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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 번도 의사를 찾아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금방 태어나는 아기도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해산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은 의사와 함께 태어나 의사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챙기고 의사의 사망진단을 받아 세상을 떠나게 되니 의사와 같이 생과 사를 맞이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없애주는 의사. 의사의 역할을 말하라면 수십 권의 책을 쓰더라도 부족할 거다. 생명을 관장하는 의사이니만큼 의사가 되기 또한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웬 만큼의 뒷받침과 조력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기다 의사가 되려는 학생의 머리가 좋아야 하고 성적도 상위권에 있어야 의대 입학이 가능하다.

지인 중에 이가 아파서 치과의사를 찾아간 사람이 있다. 치아를 진찰한 의사는 이 속이 거의 썩어 이를 빼지 않으려면 수술에 가까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받은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에게 개인전화번호를 주면서 아프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개인문자를 통해 통증의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그 지인은 의사의 진료와 배려를 통해 깔끔히 치아를 치료했고 두 달 이상이나 치통으로 고생하던 것을 마감했다. 세상에 이런 의사도 있다니. 대부분의 의사들은 절대로 개인전화번호를 주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의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도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주는 것 같으니 심의(心醫)에 가깝다 하겠다.

친구 중에 암 수술을 받은 친구가 있다. 수술 후 통증이 심했던 이 친구. 수술부위를 포함해 수술부위 아닌 다른 곳에서도 너무 통증이 심해 일주일에 두 번씩 의사를 찾아서 통증을 호소했으나 의사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말만 할 뿐, 항생제만 처방해 주었단다. 그러기를 몇 개월. 전혀 통증이 가시지 않고 계속됐었다고.

약 5개월의 통증이 계속된 후 의사가 처방해준 항생제 등의 약을 모두 끊어 버린 친구.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친구는 의사가 믿어지지 않아 1년 반 이상을 찾아가질 않았다. 그런데도 수술했던 의사는 암 환자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단 한 번의 전화도 없었다며 역시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의 명의(名醫)라면 허준(1539-1615)을 꼽을 수 있다. 스승 유의태에게서 의술을 배워 궁의 내의원에서 일하다 1575년 선조의 어의가 됐고 왕이 조선인에게 알맞은 의서를 만들라 하여 동의보감(東醫寶鑑) 25권 25책을 저술했다. 허준은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병이 생기는 이치와 침술치유를 이 책에 모아 집대성시켰다.

1999년 1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허준의 삶을 그린 드라마가 한국과 미국에서 방영(시청률 63,5%)된 적이 있다. 드라마에 보면 허준은 스승으로부터 의사의 기본자세를 배우고 의사가 된다.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긍휼과 인간에 대한 경외의 마음 등이다. 이게 그를 명의에 자리에 앉게 한 기본이 아니었을까.

환자가 의사를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기 검진이 있고 정기검진이 아니면 고통, 즉 아파서 찾아간다. 또 아프진 않지만 몸에 이상이 생겨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의사의 경우,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마음으로 대해주어야 한다. 이런 의사, 즉 마음으로 환자를 보고 진료하는 의사들이 요즘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죽음 같은 고통을 없애주는 의사의 역할. 얼마나 중하고 귀한가. 세상에 병원과 의사가 없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갈까. 그래서 의사는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바라기는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심의(心醫)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모든 병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생긴다고 말한 그는 <공기. 물. 흙에 관해서>란 책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말.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최대한 존중한다...>. 명의(名醫)와 심의(心醫)의 말이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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