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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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과 새

2017-04-29 (토) 소예리/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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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우리 교당 뒤쪽 한 구석에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 과장하여 숲이고 그냥 조그만 대밭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고향집 뒤에도 대나무 숲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 건물을 구입하면서 미국에서 흔치 않은 대숲이 우리 소유의 부지에 있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 반갑게 느껴졌었다.

이 대숲에는 무척 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동녘에 해가 떠오르기도 전부터 부지런히 소리를 내며 아침잠을 깨우곤 했다. 한 겨울엔 좀 덜하고 봄이 오면 유독 그 소리가 크게 들려 마음을 일깨우곤 했다. 사실 겨울에도 그들은 소리를 내고 있었을 텐데 문을 꽁꽁 닫고 사는 일이 많은 시절이라 잘 안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 사는 세월이 쌓여가고 그렇게 새소리가 내 일상과 하나 되어 그들이 있는 지 없는 지 신경도 안 쓰고 살게 된 오늘 아침 다시 내 귀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마음에 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것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을 보니 봄이 가까워졌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점이 감지되었다. 새소리의 질량이 그동안과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쫑알쫑알 귀가 시끄럽게 지지배배 거렸을 텐데 소리가 작아졌다. 새들의 숫자가 줄어든 느낌이 확 들어왔다. 어찌된 일이지?


갑자기 연구 모드에 돌입하여 새소리가 줄어든 이유를 살펴보았다. 나는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하 그들의 숲이 줄어들었구나. 우리 대밭이 더 이상 그들에게 편안한 환경이 아니구나.

이 집에 이사 온 첫해, 둘째 해에는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봄에 나는 죽순을 잘라 나물도 해먹고 저장도 하여 활용했었다. 그때만 해도 제법 통통한 대나무들이 숲을 장악하고 있었다. 전 집주인은 현지인이었기에 그들이 죽순을 먹진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채소를 심을 만한 땅이 부족하고 조금 있는 땅이 대나무 그늘에 가려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그 숲은 채마밭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몇 년 한 겨울 지독한 추위와 많은 눈에 그 위세가 꺾여 부러지고 동해 입기를 몇 번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해에는 죽거나 부러진 대나무들을 쳐내고 대숲을 대청소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뒷집 마당이 보일 정도로. 그러다보니 목숨 부지하고 있는 자잘한 대나무들만 남아있어 그들이 숨고 의지할 곳이 당연히 마땅치 않아져서 더 안온한 곳을 찾아 떠났던 것이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불지품 법문(法文)이 떠오른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 이 세상에 크고 작은 산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 가장 크고 깊고 나무가 많은 산에 수많은 짐승이 의지하고 살며, 크고 작은 냇물이 곳곳마다 흐르나 그 중에 가장 넓고 깊은 바다에 수많은 고기가 의지하고 사는 것 같이, 여러 사람이 다 각각 세상을 지도한다고 하나 그 중에 가장 덕이 많고 자비(慈悲)가 너른 인물이라야 수많은 중생이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다 같이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나니라.

그동안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하였지만 대숲과 새소리의 사이에서도 인과의 이치가 엄연히 작동하고 있었고, 그런 역학관계 속에서 그들의 소리가 점차 내 마음에서 떠나게 된 것이었으며, 다시 숲이 무성해지면 새들은 찾아와 둥지를 틀 것이 자명한 일임을 나는 안다.

나는 오늘 아침 우리 대숲에 다시 찾아와 소리 내 준 새들을 통하여 가장 크고 깊고 나무가 많은 산이 되고, 가장 덕이 많고 자비가 너른 인물이 되기 위하여 오래오래 깊이 있게 너르게 신앙과 수행을 길들여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저를 일깨워주신 새 부처님 고맙습니다.

<소예리/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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