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인과 독우드 (Dogwood)

2017-04-15 (토) 전미리/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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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계절 봄!
희망과 환희로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1년중 가장 화려하고 태양빛이 아름다운 달 4월,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4월의 보석은 다이아몬드라고 하는가 보다. 훈훈한 바람결에 아지랑이 숲속에 가득하고 튤립과 히아신스는 지루했던 우리 마음을 활짝 열어주며 향기롭게 피었다. 긴 겨울이 떠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동안 가엽게도 눈 비 맞은 목련은 피어나려하다 그만 시들어 버리고 계절을 잃었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내가 불러줄 ‘4월의 노래’도 듣지 못한 채 목련은 다시 피어날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목련이 지고 나면 벚꽃이 피고 지고 이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나무 독우드가 4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한때 나의 집 마당에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간직한 세 그루의 독우드가 자라고 있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4월 중순) 꽃잎들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피어난다. 가을에는 작은 빨간 열매가 달린다. 가지마다 하늘하늘 매달린 독우드 꽃은 나에게 생동감의 기쁨을 주는 아름다움이 있어 즐거운 꽃이다. 자신있게 펼쳐진 꽃잎 하나하나는 바람이 없어도 나풀거리는 듯 떠 있다. 나는 요즘 한창 피고 있는 독우드 꽃을 바라보며 잊혀지지 않는 한 노인(Charles)을 기억한다.


어느 날 한적한 마을의 길가 집에 심겨져 있는 독우드를 보았다. 그리고 주인을 찾았다. 내가 독우드를 좋아하는데 그 나무를 팔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젊은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자기 아버지에게 가 보라고 집을 가르쳐 주었다.

그 집(Martinsville NJ)에 가서 만난 백인 노인에게 나는 독우드를 사러 왔다고 말했다. 노인은 돈은 받지 않고 그냥 주겠다고 하면서 힘있게 삽을 움직였다.“몇 그루가 필요하니?" 노인의 물음에 나는 “흰 것과 분홍색을 섞어 세 그루요. 그런데 돈을 좀 받으셔야죠." 했더니, 노인은 “그냥 가기가 불편하면 1달러만 내고 가거라”고 하면서 꽃을 자동차에 실어 주었다.

그 나무는 우리 집 둘레에서 잘 자라면서 우아하고 곱게 꽃을 피웠다. 흰 색과 분홍색의 어우러짐이 온통 집을 덮었다. 해마다 독우드에 꽃이 피면 그 고마운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마음을 꽃에서 본다. 몇 년 후 나무가 크게 자라고 꽃이 만발한 어느 날 쿠키 한 박스를 들고 그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려도 답이 없었다. 이웃집 사람이 할아버지가 양로원에 들어갔다고 전해 주었다. 일찌기 찾아보지 않은 나를 책망하면서 슬프고 아쉬운 마음 금치 못했다.이 나무가 너의 집 뜰에서 잘 자라고 꽃이 피면 너희 집 앞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즐길 것이고 나도 한 번씩 지나면서 쳐다볼 게다. 그러니 잘 키워라. 그냥 가기 불편하면 1달러만 내고 가거라. 노인의 훌륭한 생각과 고운 마음씨, 그 인자한 음성이 지금도 독우드 꽃 사이로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다.

<전미리/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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