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제쯤 우리는…

2017-04-1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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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이 지난 9일 좌석의 오버부킹(초과예약)으로 무작위 선발된 승객이 하차를 거부하자 공항 경찰을 동원, 강제퇴거 시키는 장면이 소셜 미디어에 공개되며 충격과 함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바닥에 드러누운 아시안 노인이 질질 끌려가면서 훌렁 셔츠가 위로 벗겨 올라가 퉁퉁한 배가 그대로 드러난 모습은 무참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아시안 이민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 수모를 당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며 내가 이 대접을 받으려고 미국 땅에 이민 왔나 하는 슬픔, 두려움, 자괴감이 엄습할 것이다. 이쯤 되면 ‘소비자는 왕이다’가 아니라 ‘승객은 봉이다’ 이다.

이 피해자는 베트남계 미국인 내과의사 데이비드 다오로 켄터키주 루이빌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다음날 오전부터 예약환자가 있다며 하차를 거부한 것이었다. 현재 시카고 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한다. 한인이민자들도 그와 함께 상처 입은 마음일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이와같은 아시안 비하 행동이나 발언은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주류방송의 아시안 비하 발언이나 유명 코미디언이 아시안을 소재로 한 조롱 비하발언을 하는 것들이다. 그럴 때마다 방송에 항의하고 당사자의 사과를 받아내어도 좀처럼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인 2세여성을 포함한 일행 4명이 빅베어 마운틴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숙박공유서비스 에어이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박업소에서 “방을 빌려주지 않겠다. 당신이 아시안이기 때문이다”는 말을 들었다. 이 여성은 인종차별적 태도를 신고했고 이 업주는 에어이앤비측으로부터 퇴출당했다. 작년 10월에는 중국계 마이클 루오가 스토리파이에 올린 글이 아시안이민자 2세들의 공감을 산 적이 있다.

“오늘 맨하탄 어퍼이스트에서 교회를 마친 후 가족과 함께 한국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있는데 잘 차려입은 여성이 ‘중국으로 돌아가라,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아시안은 영구히 이 나라에 속할 수 없다, 언제쯤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게 될까? 이민 2세들은 과연 어디에 속한 것일까” 하는 한탄을 했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로 뉴욕타임스 에디터란 좋은 직장을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직장을 가진 한인 2세, 3세들이 언제 어디서라도 당했거나 당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사실 한인 2세들은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철이 들면서 정체성을 갖게 되지만 아시안의 얼굴을 하고있는 한 평생 코리안 아메리칸이라 불린다.

이번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은 미국 의회가 진상 조사에 나섰고 유나이티드 항공 보이콧에 동참하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다. 지난 2001년 9.11테러때 납치된 유나이티드 항공은 남쪽 타워에, 아메리칸 항공은 북쪽 타워에 충돌하여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그후, 미국인들, 나 역시 여행갈 때 일부러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 앞으로는 인종차별 하는 이 항공사에 빚진 마음이 없을 것이다.

아시안 비하 발언 및 태도를 당할 때 그냥 참고 물러나지는 말자. 아시안이라 차별받고 무시당했다면 그 자리에서 사과 받거나 업소 웹사이트에 메일을 보내고 SNS에 올리자.
심한 경우 고소하라. 현장 동영상이나 증인 확보는 기본이다. 그런데, 본인의 능력 부족, 실수나 오해로 빚어진 일인데 무조건 인종차별로 몰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언어와 풍습에 익숙치 못한 이민자들이 실수하고 발음이 나쁜 것은 흔한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말이 안통하는 상대라면 똑바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기선을 제압하라. 안되면 한국말로 실컷 욕하라.

또한 나 자신이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마음속에 중국인, 흑인, 히스패닉, 조선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인종차별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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