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립선언문’과 ‘인종차별퇴치’

2017-04-11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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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매년 삼일절 기념예배를 드리는 것은 ‘뉴욕한인교회’의 전통이다. 뉴욕시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삼일운동 그 다음해인 1920년에 기념식을 가졌던 것이 동기가 되어 뉴욕한인교회가 출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독립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미국인들이 동참했던 기념식에서 그들은 첫 한인교회시작에 지원을 약속했고, 조병옥 박사를 비롯한 몇몇 한인들의 노력으로 그 다음해인1921년 4월 맨하탄에 위치한 매디슨 애비뉴 감리교회에서 임종순 목사를 모시고 60여명이 한국어로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 당시는 인종차별이 대단히 심했던 터여서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같은 해 1920년에 흑인 남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졌으니 한인들에게 베풀어진 각별한 도움은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또한 안익택씨가 이 교회에서 애국가 발표회를 가졌던 사실 역시 민족교회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며 한인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도 겸비한 이민 역사를 갖고 있다.


올 삼일절 예배시간에도 예년처럼 읽혀진 독립선언문 발췌문을 들으며 그 포괄적이고 폭넓은 안목의 세계관과 깊은 신앙에 근거한 내용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이 겪은 억압과 고난의 경험을 통하여 민족차별을 퇴치하여 자유인으로 살아야 함을 목숨을 걸고 선포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타인종과 함께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겸허하게 따라야 할 이념이다.

내가 이민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 초기만 해도 어쩌다 거리에서 한인을 마주치면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던 때였다. 당시 주일예배 참석자가 200여명 정도였던 이 교회는 친교를 통해 향수를 달래며 뉴스를 나누고 네트워크를 하는 중요한 커뮤니티 센터이기도 했다.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예배 때에 애국가를 부르게 되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구절에는 전율을 느끼며 마치 애국자로 부상된 기분에 젖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구절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세계화된 시대에 미국을 내 나라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데에 상당히 배타적이며 구세대적인 민족차별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독립선언문을 읽는 마음은 달랐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는 구절은 33인들의 신앙을 엿 보게 하며 “다른 민족에게 억눌러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겨레의 존엄성이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며, …” 라는 구절은 10년의 억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목숨을 내 놓은 용감하고 거룩한 선언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무려 500여 년간을 더 심한 억압과 고통을 받으며 생존권과 존엄성을 빼앗겼던 우리의 이웃 흑인들의 입장을 우리들이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완연한 언어도단이다. “….. 차별에서 오는 고르지 못함과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 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인 것…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라는 구절은 민족과 인종차별퇴치 태도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하게 되누나….”라는 마지막 부분은 남녀노소의 평등함과 부활의 희망과 기쁨, 새 삶을 말하고 천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더구나 공약삼장 마지막에 “공명정대하게 하라”는 구절은 오늘날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사태들을 목격하는 우리 모두가 명심하고 실행하여야 할 참 교훈이다.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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