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제나 봄

2017-04-07 (금) 고명선 수필가
크게 작게

▶ 커네티컷 칼럼

아들이 직장에서 승진시험을 치르게 되어 6주간 공부만 한단다. 출근해서 온종일 공부하고 정해진 기간에 세 개의 자격증을 따면 승진과 함께 보수도 올라간다고 한다. 대학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올 때 몇 권의 전문서적과 기타를 달랑 매고 왔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을 했으면 다른 것은 다 버려두고라도 책을 담은 상자 하나쯤은 들고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입학원서 쓸 때만 해도 음악을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전공을 열심히 탐구하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들이 음악은 나의 꿈이라고 무릎을 꿇던 철없는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학교 다닐 때보다 공부가 재미있고 잘 된다고 한다. 가장이 되고 녹록하지 않은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철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공부할 때와 돈을 벌어야 할 때가 있다. 없는 듯 지내야 할 때가 있고 자신을 내세워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순리를 따른다 해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봄날 같은 풋풋한 시절은 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있다.


다리에 힘없고 눈이 침침하기 전에 여행도 자주 다니고 취미 활동도 부지런히 하라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면 손에서 일을 놓지 말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은연중 고백이 아닌가도 싶다. 불현듯 나의 아득한 젊은 날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들의 넓은 등을 토닥이며 따로 사는 아들 가정의 앞날을 그려본다.

고국에 있는 친구의 아들 결혼식 소식이 들린다. 초등학교부터 야구선수를 했던 아들을 위해 친구는 아들의 손과 발로 살아왔다. 내가 한국에 다니러 간 어느 해 봄날에도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노란 개나리 울타리 옆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는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은 총무라고 했다. 점심때를 기다렸다가 감독과 코치의 밥상을 챙긴 후 선수들에게 배식했다. 힘든 일이지만 아들이 야구명문 학교의 진학을 위해서 이 정도는 참아내야 한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사이다만 마셔도 건배를 외치며 미래의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아들 사인을 미리 받아 놓으라던 애교에 웃음꽃이 피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입단이 좌절되자 친구의 꿈도 함께 무너졌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친구와 소식이 끊겼다. 몇 해 뒤에 들은 친구의 말은 “내 봄 어디 갔어”였다. 눈감고 허공을 향해 홈런을 날렸다는 힘없는 말이 두고두고 잊히지를 않는다.

묵은 땅을 비집고 나온 새싹을 보고 있노라니 신비하고 경이롭다. 생명의 강인함이 온몸을 곧추세우게 하고 새로운 소망을 불러들인다. 막 피어나는 봄의 상징을 사람에 빗대어 청춘이라 여기는 이유를 누군들 모르겠는가. 화려함과 진한 향을 지녔다 한들 지지 않는 꽃은 없다.

꽃 지듯 한 찬란한 젊음이 한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이미 아쉬움 가득한 가을로 접어들 때가 아니었던가.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매 맺히듯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여물어 가는 가슴에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비 갠 하늘이 말갛게 다가온다. 땀 밴 양발을 빨아 짝을 맞추며 삶의 귀퉁이에 붙어있는 편안함을 둘러본다.

갈겨쓰듯이 서두르며 지낸 시간이 몽당연필이 되었다. 이제는 꾹꾹 눌러써야 글씨가 되는 자꾸만 더 짧아지는 남은 시간이 숙제로 펼쳐져 있다. 지금도 피는 아들의 봄이 밝은 내일이 되고 친구의 축복된 잔치에 찾아온 봄도 언제나 그해 봄처럼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명선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