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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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의 문화

2017-03-07 (화) 김삼우/뉴욕 선련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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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감성, 관념으로 깨닫는 지각과, 느낌과 직관으로 깨닫는 감각이다. 만약 우리 글자가 없고 우리말로 생각하고(사고능력), 우리 정서와 감성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다면 과연 오늘같이 왕성한 문화 예술 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나는 조국을 떠나 생각과 사고방식이 다원주의 서구가치관을 따라온 지 오래 되었지만 가끔 김치를 먹고 정의 문화를 생각할 때가 있다. 15년 전인가 한국에서 손님과 나이애가라 폭포 구경을 갔다. 시내에 돌아와 진열장을 보고 있는데 6~7살 되는 남자아이가 따라다니는 것 같아 돌아보니 가까이 와서 “Are you Korean?” 한다. 그렇다 하니 “Me too”라고 한다. 조금 떨어져서 백인부부가 너그러운 웃음으로 쳐다본다. 아들의 정체성을 지켜주려고 하는 양부모의 갸륵한 심정, 정에 목말라 하는 입양아의 안타까움에 나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카고 선련사에 있을 때였다. 미네소타에 산다는 입양아 고등학생이 찾아왔다. 나이가 3~4 살 때라고 한다. 엄마가 자기를 택시에 태워 어디로 가는데 밖에는 할머니와 친척들이 서 있었다. 엄마는 내가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리고 해 엄마 어디 가 하니, 좋은 곳에 가 살라고 데리고 가는 거야 해서, 엄마 없이 좋은 곳이 어디 있어 했던 기억이 전부라고 한다. 곧 온다던 엄마는 오지않고 1년 가까운 입양수속을 거쳐 미네소타농촌에서 목축업을 하는 양부모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John은 혼혈아였다. 그래도 한국서 태어나고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시골농촌이라 기회가 없었다. John은 열심히 공부해 부푼 마음으로 시카고를 방문 한인타운을 찾았다고 한다.

들뜬 마음에 식당에 들어가 반가와서 인사겸 “l’m a Korean.” 라고 했다. 그러나 식당 안 한국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을 해야지 왜 한국말은 못하노.... 이렇게 감정의 엇박자를 이어가다, 드디어 한 사람이 잘 봐라, 한국 사람이 무슨 한국 사람이고, 검둥이다. 그래 맞다. 나도 뭐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10년 전 엄마 그리워하던 따뜻함을 기대했던 자기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깨닫고 쌀밥과 김치를 시켜먹고 서운한 마음을 안고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검둥이가 무슨 말인지 묻는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때처럼 내 정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 본적이 없었다. John의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을 정을 듬뿍 담아 채워주고 싶었다. 가기 전 불전에 데리고 가서 같이 몇 번씩 절을 하고 손을 힘껏 잡고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살면 자기와 남에게 빛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짐해주었다.

우리는 수난의 역사를 살아왔고, 지금도 남북분단으로 희생이 된 이산가족들의 원한에 맺힌 절규가 있고, 국제미아가 되어 떠도는 입양아들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한(맺힌)’ 문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친절하고 사랑하는 마음 ‘정’ 문화가 있다. 가족과 연인사이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정 문화가 있다. 정을 공유하는 마음공부를 해서 정을 주고 나누는 사회를 만드는데 다같이 동참하자.

<김삼우/뉴욕 선련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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