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의 공개요청에 “비밀 유지 원칙 근간 무너뜨릴 위험”
▶ ‘엡스타인 리스트 은폐 의혹’ 확산에 트럼프 곤혹

2020년 뉴욕서 열린 엡스타인 연인 맥스웰 사건 브리핑[로이터]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사망)의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과 관련한 법원 증언 기록을 공개하게 해달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을 미 법원이 11일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이날 맥스웰의 재판 과정에서 나온 대배심 증언록을 공개하게 해달라는 미 법무부의 요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플로리다 연방법원이 엡스타인 형사재판 관련 대배심 증언록 공개 요청을 기각한 데 이어 뉴욕 연방법원 판사 역시 공범인 맥스웰 기소를 둘러싼 대배심 기록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연이어 결정한 것이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결정문에서 대배심 증언록 공개는 '특별한 상황'에 해당하는 예외적 적용이라면서 "이 같은 예외를 행정부 요청처럼 경솔하고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것은 대배심이 전제로 하는 비밀 유지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연방 중범죄 사건의 경우 대배심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증인을 소환해 증언을 청취하기도 하는데 모든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팸 본디 법무장관에게 엡스타인 사건의 대배심 증언 내용 중 의미 있는 것은 법원 승인을 받아 전부 공개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자신의 자택과 별장 등에서 미성년자 수십 명을 비롯해 여성 다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체포됐다가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엡스타인으로부터 성 접대를 받은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엡스타인 리스트'가 존재한다거나 그의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등의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맥스웰은 엡스타인 사후 미성년자 성 착취에 가담한 공범으로 기소돼 2021년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미 우파 논객들과 음모론자들은 수년간 엡스타인 사건에 집착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관련 파일을 모두 공개해 '고객 명단'은 물론 명단 은폐에 가담해온 인사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엡스타인과 함께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 대부분은 민주당 소속의 유력인사이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고객 명단'을 숨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2월 팸 본디 법무장관은 언론인터뷰에서 엡스타인 고객 명단이 자신의 책상에 올라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지난달엔 고객 명단은 없으며, 추가 공개할 문서도, 새롭게 수사할 사항도 없다고 밝힌 이후 트럼프 지지층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이 과거 각별한 사이였다는 정황,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수회 적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트럼프 지지층 동요가 거세졌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자 대배심 증언록 공개를 지시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