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문화와 아이들의 자존감

2017-02-11 (토) 박신효/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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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9살 남자 아이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우는 과정 속에서 때로는 아이의 정체성에 대해 나까지 혼돈이 생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아이가 학교가기 전까지 철저히 한국말만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섞어쓰던 영어 단어 하나 쓰지 않던 나다.

그런데 유치원을 보내면서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이를 보며 화장실은 제대로 갈 수 있으려나 마음 졸이게 되었다. 거기다 또래 미국 아이들보다 언어 구사능력이 떨어진다며 언어치료사를 만나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똑똑치 못한 엄마 마음을 그야말로 혼돈스럽게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럼 차라리 이 아이를 미국 아이처럼 키워야 하나? 하지만 그건 이미 내 선택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았다. 최근 Pre-K 를 시작으로 ?고등학교까지 international day, Cultural day, Heritage day 등, 다양한 이름의 행사들이 학교에서 펼쳐진다. 예전에는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학교에서만 이루어졌던 행사들인데, 이제는 서버브나 맨하탄의 한인 학생이 한 두명인 학교에서까지 이런 행사들이 열린다.


이제 구정이 ‘Chinese new year’ 이라기보다 ‘Lunar new year’ 로 자리잡았고, 설날을 쇠는 부모의 문화를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서로 나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지만 한국인의 얼굴을 한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한국인의로서의 자존감,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다.

얼마 전 한 신부가 결혼을 앞두고 한복을 입고 폐백을 드리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탈리안 신랑과 결혼을 앞둔 이 아가씨는 폐백을 통해 이탈리안 가족들에게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소개하고, 동시에 한국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는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했다.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구를 외우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동시에 그 마음 예쁜 신부의 부모는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할까 하는 마음에 흐뭇했다. 단순히 폐백이라는 절차의 가격만을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깊은 의미를 새기며 앞날을 준비하는 이 감동적인 신부를 나는 빨리 만나고 싶다.

이제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사람,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사람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2세들을 미국 사람을 닮아가게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모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 자부심을 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더 튼튼히 주류사회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를.

<박신효/한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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