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로원 가는 길

2017-02-11 (토) 윤혜영 병원근무/티넥
크게 작게

▶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매 주말 나는 어머니가 계신 양로원으로 향한다. 갈아입으실 옷과 음식 조금을 챙겨서 들고 간다.

내 어머니는 90 되시던 해. 심장에 밧데리를 끼우는 시술을 받으신 후 담당 간호사에게 양로원으로 가시겠다고 선언하셨다. 노인아파트에서 혼자 15년을 살아오시면서 단 한 번도 양로원을 언급하신 적이 없고 또 마켓을 다녀오시거나 웬만한 나들이는 혼자 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양로원행을 결정하신 것은 참 놀라웠다.

양로원이란 곳은 오래전 생소하고 어둡게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하고는 아무상관이 없는 장소이며 살아생전 나하고 연관지어질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을 곳이었다. 낡고 바삭거리는 노인들, 죽음으로 가는 행렬의 표를 받아들고 천천히 움직이는 무리들…. 그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모여있는 장소가 양로원이 아니었던가. 그곳을 내 어머니가 가시겠다니….


까뮈의 ‘ 이방인 ‘의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임종 소식 연락을 받고 주소를 찾아 갔던 곳. 그 양로원이라는 장소는 내게 회색벽돌로 지어진 살아 숨쉬는 죽음의 장소로 느껴지는 소설 속의 무대였을 뿐이었다.

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양로원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라는 자각은 생겼지만 그래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양로원으로 가시겠어요?”
효녀 소리는커녕 딸 노릇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처지지만 내 어머니가 양로원에 가신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터라 당황하고 뜨끔하여 말했다.“내가 양로원에 가면 나 편하고 그리고 너희들 편하다. 그러니 나 살던 아파트에 내가 쓰던 것 다 알아서 버리든지 필요한 것 있으면 갖던지 알아서 처리해라” 그렇게 들어가신 양로원 생활이 7년째가 되신다.

“내가 너무 오래 살고 있다. 내 맘대로 안되는 게 죽고 사는 일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만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이따금 그런 푸념도 하시지만 자식에게 의지하기 싫어 길 건널 때조차 부축하는 팔을 뿌리치시는 분이시라 양로원 생활이 마냥 행복할리는 없으시련만 시간시간 시계를 체크하며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규칙을 잘 따르는 학생처럼 충실하게 지키며 살고 계신다.

이제 엔돌핀이 샘솟는 기쁘고 신나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높은 연세에 청력이 좀 약하실 뿐 성인병도 없고 정신이 명료하신데 그 옛날같이 함께 하하 웃고 수다 떨 일도 없다. 그냥 옷을 바꿔 입혀드리고 나면 창밖의 나무숲을 멀거니 바라보다 애써 대화를 풀면 두 세 마디에 오가는 말이 끊어져 버린다.

슬픔이나 기쁨, 가지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많아 보기에 주책스럽다 해도 그것이 건강한 삶인지도 모른다. 노쇠로 소멸해버린 감정은 연약해 보이는 육신만큼이나 메말라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

혼자서는 화장실 출입처리도 못하고 물 한 그릇 떠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된 노인이 자식과 함께 살기를 고집하고 양로원이라면 펄쩍뛰는 분들도 많이 본다..자식들이 분명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훗날 내가 그곳에 갈 때가 온다면 나는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용감하고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

“용감한 어머니….”
“너희들이 편해야 내가 편하다. 그러면 양로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육신이 노쇠해도 자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노쇠하지 않는 것일까.’

<윤혜영 병원근무/티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