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고양이보다 과연 나을까?

2017-02-09 (목)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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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 일본의 유명한 작가 나쓰메 소세끼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읽었다. 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메이지 시대)를 산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배가 고파 기어들어간 중학교의 영어선생 구샤미네 살게 되면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아 이름도 없이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가 산 세대는 메이지 시대의 서양 문물의 쇄도, 모든 것이 변화의 연속-근대화와 서양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던 격동기다.

괴팍스럽고 외고집의 구사미선생 집에 드나드는 여러 부류의 인물들을 이 철학적이고 영리한 고양이는 세세히 묘사하면서, 나는 고양이지만 참 인간들은 희한한 동물들이라고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 일침을 놓기도 하면서 자기 의견을 내놓는데, 이는 물론 작가 자신의 소신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현 사태를 이 고양이의 눈으로 보았다면 얼마나 신랄한 비평을 해댔을까. 똑똑하고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기라성 같이 많은 21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최순실 국정농단”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더 기가 막힌 것은, 잘못된 비리와 범법행위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그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가하면 정작 책임을 질 사람들은 “나는 몰랐다”, “그런 일은 없다”, “조작이다” 라고 주장하니 과연 이래도 우리가 나쓰ㅡ메 소세끼의 이름 없는 고양이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 고양이는 옳고 그른 걸 제대로 보고 판단하고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았는데 보수와 진보진영이 다 무엇인가?

인간에게서 맑은 양심과 이성적인 분별력을 제거하고 자기 이권에 따라 벌이는 논쟁, 권력 파벌 싸움은 정말 보기에도 진저리쳐지고 영원히 해결나지 않는 상태로 이어질 것이다.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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