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를 맞이하는 바람

2016-12-31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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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였다. 미국에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국에선 박근혜대통령이 국회탄핵으로 인해 대통령업무가 금지됐다. 트럼프는 오바마와 대통령인수인계를 앞두고 있고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의 기다림, 하늘과 땅인 것 같다.

한편, 사분오열된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노라면 한 숨이 나온다. 보수 여당은 두 개로 쪼개지고 잠룡들은 틈새를 비집고 서로 대권을 잡아보려 한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사는 게 너무 어렵다 하고 수출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가는 등 한반도 남쪽나라의 상황은 말 그대로 IMF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질 않나 생각이 든다.

한국의 중소기업중앙회가 2017년 사자성어에 파부침주(破釜沈舟)를 뽑았다. 전국의 중소제조서비스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파부침주란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중소기업들이 선정한 이 말은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워보겠다고 하는 결심이 들어있다.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편법으로 중소기업과 소상인들의 먹을거리마저 빼앗아 가는 현 시국에 다분히 대처하겠다는 각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문제는 정경유착이 관행처럼 되어 있는 한국의 정부와 경제계가 중소기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해지는 기분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살 텐데...

2017년도의 사자성어로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뽑은 건 무얼까.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군주민수란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군자주야(君子舟也) 서인자수야(庶人者水也) 수즉재주(水則載舟) 수즉복주(水則覆舟)이다. 뜻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이다.

역사 이래 백성을 무시하고 업신여긴 군주는 말로가 좋지 않았다. 백성이 무슨 봉인가.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왕도 있다. 백성이 뽑은 군주(대통령)가 백성의 뜻을 받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물인 백성이 배를 가만두지 않을 수가 있는 거다. 2,400여 년 전 중국에 살았던 순자의 말은 지금도 통한다.

2017년은 붉은 닭띠의 해 정유(丁酉)년이다. 예부터 닭은 12간지의 열 번째 동물로 방향으로는 서쪽, 달로는 음력8월에 해당한다. 한반도 민족에겐 닭은 다섯 가지 덕으로 상징돼 왔다. 닭 벼슬은 문(文), 발톱은 무(武), 적을 앞두고 싸우는 용(勇), 먹이는 반드시 무리와 같이 먹는 인(仁), 때맞추어 새벽을 알리는 신(信)이다.

또 닭은 빛의 열림을 알린다 하여 태양의 새라고도 불린다. 신화에서는 닭의 울음소리를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로 보았다. 그런데 요즘 태양의 새인 닭들이 한국에서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상최악이라고 하는 조류독감(AI) 때문이다. AI로 인해 2,000여만 마리의 닭이 살(殺)처분 된 상황이다. 안됐다.

얼마 전 방송에서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20)씨의 피아노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세 살 때 사고로 한 팔을 잃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다섯 살 때부터 한손과 팔꿈치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2013년엔 전국장애인음악콩쿠르 ‘기적의 오디션’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2015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대학)에 입학해 다닌다.

한 손과 팔꿈치로 피아노를 치는 최혜연씨가 바라는 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거란다. 살아야 할 가치와 희망. 희망이 없다면 살 가치가 없겠지. 세상살이가 아무리 뒤숭숭해도 희망만 있다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모두가 다 잘사는 그런 희망! 한 팔로도 피아노를 치는데 두 팔로 무엇을 못할까? 라는 희망.

원숭이가 가고 닭이 시작되는 새해. 새해엔 미국이든 한국이든 국민들, 특히 서민들이 더 잘살아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또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가 아닌 빈익부(貧益富) 부익빈(富益貧)이 되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 가난한 사람은 좀 더 많이 벌고 부자는 좀 덜 버는 그런 세상이길 기대해 보는 거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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