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편지

2016-10-22 (토) 전미리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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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구르몽의 시 한 구절을 읊으며 또한 오톰 리브스를 부른 불란서 가수 이브 몽땅의 포근한 목소리가 단풍잎에 실려 오는듯한 산길에서 스마트폰 문화에 퇴색되어 가는 우리의 옛 정서를 그리워한다. 편지요! 하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우체부 아저씨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립고, 정성들인 친구의 필적이 담긴 종이 냄새가 그립다.

몇 년 전 하루를 함께 지낸 80대의 할머니가 보내준 한 장의 편지는 항상 나의 가슴에 따뜻하게 젖어든다. 그녀는 내가 나이보다 젊다고 나를 Young 미리 라고 불렀다.
Young 미리씨; 짧고 하루도 같이 지내지 못한 우리 네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과 인품을 지니고 인생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잖은가요? 그 조그만 꽃에 느끼는 감정은 같은 분모로 우리를 하나로 묶기도 했잖아요?

어떤 꽃도 아름답고 어느 새끼도 돼지로부터 코끼리까지 귀엽고, 하는 짓은 앳되고 사랑을 받기 충분하잖아요. 우리 나이가 더 들던 덜 들던 같은 마음을 가진 서로 다른 모양의 꽃들이 아닐까요?


우리가 Andre Rieu의 멜로디를 가슴속에 담고 남들은 보잘 것 없는 에미라고 하겠지만 우리도 젖을 먹인 어머니, 우리를 위해 아프면 눈물로 기도하는 아버지가 계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겠지요. 작은 톱니가 잘 맞아 잘 움직이듯 그 시간 어쩌다 가졌던, 뽑아도 몇 개, 한 번의 향긋한 꽃 되던 시간을 기념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꿈꾸며 내 마음을 전해 봅니다.

Young 미리씨는 우리네 밤에는 오므라져서 보지 못하고 해가 뜨면 활짝 피는 그 어머니 모시적삼에 맞았든 단추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여자지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여자답군요.아, 시카고에 할마이도 몇 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Andre Rieu 한 떨기 장미꽃 노래에 파묻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답니다.

안녕! 윤석곤
윤석곤 여사님께;,
저는 지금 고요한 호수 옆 굴밤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오리들이 줄지어 떠다니기도 하고 엉덩이는 하늘에 맡긴 체 먹이를 찾아 곤두박질하며 퐁당거리는 오리도 있어 웃곤 합니다.

연분홍 그 작은 꽃들이 떼 지어 피었던 초원에서 윤 여사님이 보내주신 아름다운 편지를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고 또 만지작거리며 찡해오는 가슴을 구름위에 띄웠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 하나에서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즐거워하는 소녀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들! 자정도 훨씬 넘은 잠자리에서 나란히 누워 들장미 노래를 부르는 천진스런 젊은 할머니들! 늦게나마 이런 멋있는 분을 만나 함께 하였든 시간. 남은 제 인생 여정에 아름답게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건강하셔서 만나고 또 만나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CD 감사합니다. 연주자 Andre Rieu의 묘기를 그려보기 보다는 윤 여사님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듣겠습니다. 햇살에 묻어오는 바람결에 사르르 풀 베개를 베고 눕고 싶은 언덕에서 여사님 건강하시라고 기도합니다. Young이라 불러주셔서 행복합니다.

<전미리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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