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생 갚지 못할 빚

2016-10-19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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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화살이 비 오듯 날라드는 적진을 향해 죽음도 불사하고 말을 몰아 아버지를 기적적으로 구해 업고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권력자들의 모함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의 명예를 걸고 나서 아버지를 변호해 구했으며 아버지가 세 차례나 집정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아버지가 주지사로 계속 머물 수 있게 적극 나섰으며 위대한 로마제국의 창설자가 된 이후에도 자신보다 아버지를 더 높은 직위의 ‘대 스키피오’라는 칭호를 붙여 아버지를 칭송하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용맹함과 가상스러움을 보였다.

당시 로마는 그의 효성에 감동해 그를 본받는 사람이 많았으며 젊은이들이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내거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스키피오는 역사상 아버지 은혜를 넘치게 갚은 인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은혜를 갚기는커녕,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인아파트나 너싱홈에 가면 찾아오는 자식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돈이나 주면 찾아오지 안 그러면 들여다보는 자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평생 빚을 졌는데도 이처럼 부모를 소홀히 하고 심지어는 찾아오는 부모를 문전박대하고 하는 자식이 적지 않다고 한다면 이는 배은망덕이 아니겠는가.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를 보면 어느 유대인 부자에게 아들 셋이 있었다. 이 부자는 어느 날 허름한 곳으로 집을 옮겼다. 대궐같은 집에 살 때는 아들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이사하고부터는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커다란 관을 짜서 그 안에 깨진 병조각을 가득 채워나갔는데, 이따금 찾아온 아들들은 그 안에 무슨 귀한 보물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자주 아버지를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이후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들은 나무 상자를 즉각 열어 보았다. 열고 보니 유리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어 위의 두 아들은 실망해서 불만을 토해내며 그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빈 관을 붙잡고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관을 아버지 시신 옆에 잘 옮겨 놓았다. 그러자 그 관 밑에서 황금과 보석이 잔뜩 나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집과 가산을 팔아 초가집으로 이사한 후 보물들을 관 밑에 깔고 자식들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한 아들이 간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간 우엽 3분의2를 기증,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고 아들은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버지의 회복을 보는 아들은 기뻤지만 자신은 면역 및 소화기능이 저하돼 전에 없던 잔병들을 치르고 3년이 지나도록 수술부위의 피부감염이 호전되지 않아 남모르게 고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자신의 장기를 떼어 부모를 살리려고 하는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는 자식으로서 그렇게라도 해서 평생 부모에게 갚지 못할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했을 것이다. 이는 자식이 부모에게 평생 돈을 주어서 갚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행위이다.

그의 본을 받아 우리 사회에도 이런 젊은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효도도 효도지만 아버지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나서 본인은 고통속에 말 못할 고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루속히 그가 후유증에서 벗어나 다시 건강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이 어버이에게 무엇을 베풀든 간에 그것은 어버이가 자식에게 베푼 것에 비하면 지극히 약소한 것이다. 베풀 수 있는 능력자체를 어버이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세네카는 “은혜를 베푸는 것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은혜를 결코 능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들이 아무리 효도를 한다 해도 아버지가 베푼 은혜의 경지를 뛰어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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