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 주운 날

2016-10-15 (토) 윤혜영 병원근무/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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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돈을 주워서 내 주머 니에 넣었다. 물론 누군가의 호주머 니에서 돈 떨어지는 순간을 본 것도 아니고 주위에 방금 돈을 떨어뜨렸 을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냉 큼 내 주머니 속에 넣어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발견된 장소로 보아 누군가의 피눈물 나는 저녁값은 아 닐테고 경찰을 찾아서 신고하지 않 으면 안 될 거액도 아니어서 그냥 뻔뻔하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돈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유이기는 하지만 등기돼 있거나 사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단 땅에 떨어져있는 돈은 줍는 사람이 임자일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아무리 거액이 아니더라 도 페니 한개 주울 때와는 다르다. 누군가의 명언에 “1전에 울지 않으 려면 1전을 귀히 여기라”를 명심하고 있는 나는 땅에 떨어진 1페니를 꼭 줍는 편이다. 생각보다 페니는 꽤 나 많이 떨어져 있다.

아무도 줍지 않는다. 마음먹고 주우면 하루에 5 페니 정도는 쉽게 주울 수 있다. 좀 뭣 하지만 금액에 따라 마음 속 양심의 눈금도 차이가 난다. 1페 니를 줍는 사람은 돈에 욕심을 내 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나같이 그런 명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라커펠러도 차에서 내릴 때 길에 떨 어진 1페니를 보고 주워서 주머니 에 냉큼 집어넣었다는 기사는 그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런 재벌도 줍는 동전을 내가 줍지 않으면 벌 받는다.” 그런 마음 이 작동하기도 한다. 5전짜리 니클은 주울 수 있는 확 률이 아주 희박하다. 페니보다는 무 게도 듬직하고 사이즈가 달라서 쉽 게 흘리지를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10전짜리 다임은 이따 금 눈에 뜨인다. 페니가 하나 떨어졌 구나 하고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려 다보면 제 스스로 난 아니야 하듯 반짝 한다. 25전짜리 쿼러는 흔히 주을 수는 없다. 언젠가 맨하탄에서 쿼러 한 개를 주워 기쁜 나머지 한 개의 쿼러를 보태서 아코디언을 켜 는 거리의 악사 바구니에 넣어준 적 은 있다. 전에는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 톨 부스의 동전 던져 넣는 부근에 는 항상 대 여섯 개의 쿼러들이 떨 어져 있는 것을 보곤 했지만 그것은 카운티의 소속일 것 같고 또 항상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일부러 차에서 내려 주은 적은 없 다.

수년전 버스에서 두툼한 지갑을 주은 적이 있다. 내가 내릴 곳은 종 점이어서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 다가 내리려고 하는데 통로에 두툼 한 지갑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때 주워서 열어보지도 않 은 채 망설이지 운전사에게 주었고 나의 정직한 행동이 스스로 자랑스 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난 한 줄의 기사가 내 맘을 편치 않게 했다. 사연인즉, 어느 거액의 돈을 주은 사람이 주인을 찾게 되어 돌려 주었는데 그 돈을 되찾은 주인이 거 액의 사례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락한 직장까지 알선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 나도 그 지갑을 직접 주 인을 찾아 건네주었더라면…. 내 마음속에는 그때부터 질투와 욕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선함 도 자랑스러움도 사라져버리고 내 마음속은 순식간에 오염되어 방향 을 알 수 없는 분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내가 주웠던 그 지갑 속에 는 엄청난 돈이 들어있었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지갑 안에는 대대로 내려온 가보까지 들어 있어서 나는 은인이 되었다. 가난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거액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 주는 선하고 정직한 코리언 우먼의 기사가 난다, 인터뷰도 한다, 나는 정직한 크리스천이라고 뭇 크리스천 의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아마도 보 상금도 받을 것이다.

당연히 내 몫이 되어야 할 것이 내 실수(?)로 사라져버린 것이 분하 고 원통해서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내 손끝을 거쳐나간 남의 지갑이 왜 평안한 내 속 사람을 이다지도 긁어대는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많 이도 흘러간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 면 한심해서 혼자 부끄러워진다. 나는 주은 돈을 그래도 혼자 쓰 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친 구에게 전화하여 돈을 주웠다고 실 토한 후 자장면 한 그릇씩 먹고 보 태서 요리 한 접시를 더 먹는 것으 로 탕진해 버렸다.

그러니까 나 혼자 서 먹어 버린 것이 아니어서인지 마 음이 편해졌다. 누군가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 오다가 이쑤시개 서너 개를 슬쩍해 서 나왔더니 한동안 양심의 가책이 되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리고 그렇게 깨끗한 영혼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글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내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 혹시 내 깨끗한 영혼은 숨어 있는지 도 모르겠다.

<윤혜영 병원근무/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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