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빛바랜 감격

2016-08-27 (토) 주진경 은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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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 71년! 우리나라가 초근목피의 굶주림과 잔인무도한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 된지가 70년이 된다. 70년 전, 1945년 8월15일, 그날의 감격을 누가 아는가! 마른 수수깡과 강냉이 대를 엮어 세운 울타리를 제쳐 벌리고, 회푸대 마분지로 만든 종이 확성기를 대고 “해방이 왔네, 해---방이 왔네”,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동네 청년들의 목소리가 지금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다.

창호지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 막대기에 묶어 매고 휘날리며 동네 고삿길을 누비고 달리던 그 감격을 누가 알까! 7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세파에 시달려, 희어진 머리, 주름 잡혀 주글주글해진 얼굴, 새우마냥 구부러진 허리, 나이 들어 쇠잔해진 80 넘긴 그 세대의 민초들 가슴에는 아직도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고 심금(心琴)에 남아 있다.

잘 살게 된 조국의 오늘의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해방 조국의 빛바랜 감격 현실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의 세월이 준 몫을 감당해 온 덕으로 나라는 이 만큼 살게는 되었지만 국민 행복의 인식지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광복절 경축 행사장에서 의례(儀禮)적으로 부르고 외쳐 오던 빛바랜 애국가, “동해물과...”와 “대한민국 만세”의 외침이 그 때의 뜨거웠던 감격을 새롭게 되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NLL, 국가기록문서, 국가에 내 놓아야 할 돈을 내지 않고 감춘 전직 대통령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 국무총리와 장관의 직인을 날조하여 공문서를 위조한 도지사의 행태, 대선을 앞둔 정치 경제, 사드의 찬반논쟁, 애국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에 걸친 지도급 인사들의 비리와 부정, 부도덕이 넘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순수한 해방과 자유 됨의 감격이 그 때처럼 자연스럽게 발현 될 수 있을까?

작금의 바다 저쪽에 있는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넘겨다보면 탄식을 넘어 비탄을 금할 길 없다. 종교, 국가와 사회를 계도한다는 교회는 어떤가. 의(義)와 평강, 사랑을 외치는 크고 적은 교회들의 궁중음악회와 같은 찬양소리는 어디를 향해서 울려 퍼지고 있을까? 만민을 구제하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메아리는 궁중 극장(Royal theatre)과 같은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가, 아니면 힘없고 소외된 고난과 고통의 현장에도 평강과 사랑을 외치는 찬양의 메아리가 울려오고 있는 것인가?

해방과 자유 됨의 감격이 빛을 바랜 것은 70년이라는 지나간 세월의 흐름의 탓이 아니라 나(自我) 실현, 숨지면 한 뼘 되는 땅에 묻히고 말, 이 적은 육적 몸의 성취욕 때문일 것이다. 공익, 공덕(公益 公德)의 겉옷으로 치장해 왔던 나와 나를 감싸고 있는 개인의 영달과 집단성취욕이 나라를 좀먹고 겨레를 번뇌케 하며, 역사적으로 새롭게 계대되어 가야 할 감격을 빛바래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70년전 8.15 해방의 날에 우리 또래는 회푸대 마분지를 둘둘 말아서 만든 확성기(메가폰)으로 동네를 돌면서 울타리 너머로 “해방이 왔네, 해---방이 왔네” 목이 아플 정도로 외치며 눈물을 흘렸었다. 오늘 날, 이 흑암이 깊고 땅이 혼돈한 것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그 때의 감격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주진경 은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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