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 모였다 하면 금년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누굴 찍을 건가를 논한다. 대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인가, 서로 옥신각신하다 그냥 답 없이 헤어지는 때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발견된다.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의 의식 안에도 강하게 아로새겨진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대화의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게 힐러리 쪽보다 트럼프인 걸 보면, 소위 ‘트럼프 현상’이 우리들 안에도 침입한 게 분명하다. 트럼프 지지현상의 주류를 담당하는 이들은 주로 보수적 백인 노동자들이다.
여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유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사실상 수준이하처럼 보이는 그인데도 그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에게서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거친 입담에서, 그의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에서 ‘정치가’가 아닌 ‘사람’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 힐러리에게서는 그런 인간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게 이 두 정치가를 이해하는 나의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기성 정치계에 뛰어들어 그의 ‘순백이미지’(그게 진실성이 있는 거였든 아니었든)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한때 안철수라는 인물도 그랬다. 깔끔한 외모, 단단한 스펙, 부드럽고도 강한 말솜씨, 친화력, 삶을 향한 성실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업이 아닌 아이티(IT) 사업에서의 성공신화 등, 그의 화려한 경력이 일반인들, 특히 젊은이들의 호감을 샀다.
그리고 이 인간미 중심의 대중적 지지도는 그를 급기야 서울 시장,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까지 추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이 현상 역시 뭘 말해줄까. 아무튼 그에게서 풍기는 사람냄새가 그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목사로서 여기서 긍정적으로 느낀 게 하나 있다. 목사에게서도 사람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난 목사한테서는 사람냄새가 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신학교에서, 선배 목회자들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목사는 교인들로 하여금 항상 신비적 존재로 각인될 수 있도록 내외적인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인가? 이젠 지나칠 정도로 발달된 통신수단 때문에라도 숨기고 싶어도 잘 숨겨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드러내며 교인들에게 다가가야 더 좋은 목사로 대접받는 풍토다. 그래서도 난 내게서 사람냄새가 나도록 애쓰려 한다.
반면, 그들에게서 부정적으로 배운 것도 있다. 안철수 효과가 얼마 못 갔듯 트럼프 효과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다. 어쩌면 이게 대중 스스로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함정이라고 생각된다.
대중은 변덕스러운 존재다. 사람냄새가 나는 트럼프가 수렁에서 자기들을 건져줄 구세주인양 생각하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나긴 인간역사에서 그 어느 누구도 한 국가를 영구히 회복시킨 적이 없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 안철수든 트럼프든 그들 자신 안에 대중들이 그리워하는 그 순수한 인간적 특성들이 계속 자리 잡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렇게 말해서 좀 미안한 얘기지만, 특히 트럼프는 그 ‘사람냄새’를 조작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가 짝이 없다. 해서, 목사에게서 사람냄새가 나게 하는 건 좋은 일이나 문제는 그게 얼마나 꾸준할 수 있을까이다.
바꿔 말해, 그가 원래 그 냄새의 소유자여서 그 냄새를 풍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가 일시적으로 조작된 사람냄새를 풍기고 있는 건지,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인생 경험 속에서도 느끼는 건 ‘의도된 조작’은 치졸한 것이어서 결국은 들통 나고 말더라는 사실이다. 목사를 비롯해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성직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급락하는 것도 그들 안에서 진실성보다는 의도된 조작이 더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분에게서 의도된 조작 같은 건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분은 늘 꾸준하고 오래간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꾸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람냄새 나는 트럼프, 얼마나 오래갈까? 사람냄새 나는 목회자, 얼마나 오래갈까? 오래 못 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사람냄새든 뭐든 내 안에서 좋은 것들이 오래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그 답이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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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