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입자의 고단한 삶, 한 달 월급 절반이 집주인 은행계좌로 입금

2016-08-04 (목)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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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체킹계좌서 초과 인출해 생활

▶ 현 직장 포기 다른 지역으로 이사

주택 임대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춤해졌다고는 하지만 주택 임대료는 이미 너무 올라있다. 주택 임대 수요가 주로 서민층인 점을 감안하면 가구 소득과 임대료 시세 간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족 모두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이 주택 임대료로 나가는 경우를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하버드 공공주택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약 1,1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한달 소득의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의식주에서 굳이 따지자면‘주’가 가장 중요한데 주거를 위해 나머지 기초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세입자가 많다. CNN 머니가 높은 임대료에 허덕이는 주택 세입자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전했다.

■ 임대료, 유틸리니 내면 고작 42달러 남아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에 거주하는 케이티 마요는 집주인에게 임대료 연체 벌금으로 100달러를 추가 납부하는 일이 잦다. 다음번 월급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임대료 납부일이 지나기 일쑤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유틸리티 고지서를 납부해야 하는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번갈아 가며 기한 내에 납부하는 달이 이미 여러 달이다.

나머지 유틸리티는 기한 내에 납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체료가 붙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버는 돈 전부가 주택 임대료와 유틸리티 고지서 납부로 나간다”는 마요는 10살짜리 아들과 침실 1개짜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 달에 2차례 월급 체크를 받는데 이번 달에는 임대료와 유틸리티 고지서를 내고 났더니 은행 잔고 증명서 찍힌 금액은 고작 42달러다. 42달러로 다음번 월급 체크를 받을 때까지 아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데 막막하기 그지없다.

“다음 월급날까지 음식 사고 자동차 개스를 구입하려면 은행 체킹 계좌에서 초과 인출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마요의 하소연이다.

인근 다른 동네로 이사하면 임대료가 조금 낮아 생활비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아들의 학교를 옮겨야 하고 통근 거리가 멀어져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 집을 장만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다. 집을 사려면 돈을 모아야 되는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 미안하다 아들아
새크라멘토 교외에 거주하는 제시카 킨 부부는 이제 이사란 말만 나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9년간 높은 임대료 지역 탈출을 위해 5차례나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두 아들과 함께 사는 부부는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할 때마다 생활비중 가장 만만한 식료품비을 절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창 자랄 나이인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피할 수 없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부부의 주 소득원은 남편이다. 부인이 일을 할 수 있지만 일을 해서 버는 돈이 결국 자녀를 돌보는 비용으로 다 나가기 때문에 일 대신 두 아들 보육을 전담하기로 택했다. 그래서 현재 남편이 버는 한 달 월급 중 약 44%가 매달 집주인의 은행 계좌로 고스란히 입금되고 있다.


임대료를 자꾸 올리는 집주인이 서러워 한때 홈오너가 되기로 시도한 적이 있다. 부모 집에 잠시 얹혀살면서 다운페이먼트로 열심히 모은 돈이 약 5,000달러. 이 종잣돈으로 ‘연방주택국’(FHA) 융자가 약 25만달러까지 가능하다는 승인을 받았다. 7개월 동안 열심히 집을 보러다니면서 오퍼도 수없이 제출했지만 단 한차례도 구입 계약이 진행된 적이 없었다.

더 높은 금액을 써내거나 현금으로 구입하는 바이어들 때문에 번번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결국 주택 구입은 포기하고 다시 주택 세입자 신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1년 만에 다운페이먼트 자금은 오른 임대료, 이사 비용 등으로 주택 구입의 꿈과 함께 사라졌다. 그사이 다시 오른 임대료로 인해 부부만 몇몇 고지서 납부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부모집에 3년간 얹혀살면서 어렵게 회복한 크레딧 점수는 다시 손상됐고 주택 구입의 꿈도 점점 멀어져 갔다.

■ 힘들게 얻은 꿈의 직장 포기할 수밖에
“만약에 임대료가 계속 오르면 어렵게 얻은 직장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수밖에어없어요”존-마이클 뮬레사는 2014년 첨단 기업 집결지인 실리콘 밸리에서도 알아준다는 기업에 채용돼 인디애나에주서 곧장 이사 왔다.

기업의 규모답게 뮬레사의 월급은 전보다 약 45%나 올랐다. 그런데 뮬레사가 장만한 주택의 임대료는 전에 있던 집보다 무려 약 200%나 뛰었다. 첨단 기업이 속속 모이면서 임대 수요가 폭등, 이 지역은 전국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 중 한곳이 됐다.

뮬레사는 현재 약 800 평방피트짜리 아파트를 임대하면서 한 달에 무려 약 2,000달러가 넘는 임대료를 내고 있다. 그래도 불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는 그나마 행운인 편이예요. 동네에서 임대료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하니까요. 그래도 처음 임대 계약할 때만해도 ‘미친 임대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뮬레사의 임대료는 지난해 무려 약 10%나 올랐다. 세금과 은퇴 연금 납부액을 빼고 나면 월급의 절반이 주택 임대료로 나가고 있다.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다른 아파트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이사 비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 아파트에 그냥 사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다.

다행히 지난해 승진과 함께 월급도 조금 올라 임대료 부담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당분간 계속 오를 것처럼 보이는 임대료를 보장되지도 않는 미래 승진에 의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뮬레사는 “임대료가 현재 상황처럼 계속 오른다면 더 이상 이 지역에 머물 수 없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CNN 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소연 했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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