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2016-07-23 (토) 조은숙 쇼트 힐스/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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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의 독립기념일 주말에 남부 뉴저지 작은 도시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파견 송으로 ‘America the Beautiful’을 우렁차게 한마음으로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작년 뉴저지 포코노의 작은 성당에서 같은 체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의 건국정신이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정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현재를 사는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또 그 사랑을 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던 신부님의 열정적인 강론이 마음에 남았다.

함께 파견 송을 부르면서 나 역시 아름다운 나라, 미국의 시민이라는 것이 감사했다. 어디를 가도 광대한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누구든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 나는 미국에 살기로 결정한 적이 없이 다만 한국에 돌아갈 시기를 놓쳐 머물러 앉았다는 말이 맞는 경우이다. 가끔 미국에서 살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지금도 한국이 그립고 가족이 친구들이 그립다. 그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이 서글플 때도 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미국에 산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되곤 한다면 욕먹을 말일까? 머리 좋은 친구들의 그 귀한 재질이 사회에 제대로 공헌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서다.


내가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이고 여자지만 함께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덕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여자에 대한 한국적 고정관념과 기대 등을 벗어나면서 나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내가(남의 의해 규정지어지는 내가 아니고)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미국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보다,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물으십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참 멋있는 말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말을 심각하게 나 자신에게 적용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나는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내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 이상에 관심이 없었다. 남의 나라에서 내 생활범위를 벗어난 사회나 국가공동체와의 연대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부과되는 세금을 내고 미국 법을 지키면서 그것으로 내 나라가 된 미국에 할 의무를 다한 듯 무심했었다.

그런데 요즘 전쟁에 밀려 살 자리를 잃은 자들의 이민문제로 서구세계가 와해되는 듯싶고, 미국의 대선이 미국의 성격자체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미국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미국이 미국일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정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당장 눈앞의 내 이익, 내 공동체의 이익만을 위한 근시안적 결정을 내리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된다고 마음을 먹는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지구촌의 한 식구로서 우리 모두가 좀 더 넒은 안목, 품어 안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하는 꿈을 그려본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합쳐 그리스가 되고 이태리가 되었듯이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도 국경이라는 금을 지워버리고 하나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조은숙 쇼트 힐스/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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