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누스 같은 술의 두 얼굴

2016-07-16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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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안 마셔도 살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왜들 술을 마실까. 기분이 좋아져서 아님, 취해 보려고. 창조 이래 술만큼 인류를 예술가로 만들었다 폭력가로 변신시키는 것도 드물 것 같다. 술은 두 얼굴, 즉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적당히 잘 마시면 기분도 상승하고 사교에도 좋다. 허나 잘 못 마시면 인생 끝장난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열정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 변영로의 시 <논개>(論介)의 시작부분이다. 수주의 아들이 뉴욕에 살았었다. 아버지를 닮았는지 그도 술에 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술을 좋아한 풍류객이었다.

그의 아버지 수주는 시인, 영문학자, 수필가, 교육자로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1955년 제1대 한국 펜클럽 초대 회장에 선출된 문인이자 교육자요 자유인이었다. 1950년 중반 서울에선 “술이라면 수주(변영로)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공초(시인 오상순)를 뛰어 넘을 자가 없다”할 정도로 그는 애주가였다.


술. 술은 시인을 만든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술을 좋게 평가하는 뜻에서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개(犬)로 만들기도 한다. 정말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는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는 사람들이다. 아는 변호사 중에 술에 관한 한 절제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흥겨운 자리라도 그는 적당한 선에서 술을 그만 마실 줄 안다.

민중을 개, 돼지에 비유해 대한민국, 온 백성의 원성을 사고 있는 교육부의 고위공무원(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본래부터 그의 가치관이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술이 주원인이었을 거다. 신문사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그는 뭐가 그리 기분이 상승되었던지 폭탄주 8잔과 소주 11잔을 마셨다 한다.

대한민국의 1%는 사람, 나머지 99%는 개나 돼지와 같아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표현한 나향욱의 변명이다. “죽을죄를 지었다. 영화대사를 인용한 것이지 술이 과했고 본심은 아니었다”. 폭탄주가 어떤 술인가. 양주와 맥주 혹은 맥주와 소주를 함께 부어 만들어지는 술이다. 그걸 마시면 폭탄을 마신 것 같아 폭탄주라 부른다.

나향욱의 인생, 끝장 난거나 다름없다. 미국의 메이저 야구팀에 들어가려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 정도로 어렵다. 그 틈새를 한국의 강정호선수가 들어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훨훨 날듯 뛰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강정호가 성폭행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경기 후 호텔에서 한 여성을 불러 술을 먹인 후 성폭행한 혐의다.

여기서도 술이 문제다. 여성(23)에게 술을 먹였으면 강정호는 술을 안 마셨겠나. 한창 젊은 나이(29)인 강정호. 아직은 경찰의 최종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더 두고 봐야한다. 일리노이주법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면 죄질에 따라 재판에서 최소 4년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아직 기소전이지만 이 무슨 개망신인가.

흘러간 일이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안가에서 가장 신임했던 부하에게 피격 살해된 박정희 전 대통령. 술자리였다. 만약 그날 술자리가 아니었다면, 역사는 또 달리 흘렀을 게다. 2013년 5월,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으로 박근혜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에 왔던 윤창중. 술이 취해 거의 알몸 상태에서 여성인턴을 불렀고 그는 파면됐다.

술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잘 마시면 시인이 된다. 그러나 잘 못 마시면 개가 돼 버린다. 술 많이 마시고 가족을 속상하게 했던 한 친구. 술 단절한지 6년. 가정에 화평을 되찾았다. 술은 인류의 친구이자 적도 된다. 적당히 마시면 친구요 과하면 적이다. 아니, 적이 아니라 인생 끝장이다. 야누스같은 술의 두 얼굴 잘 알고 마시자.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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