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족 최대의 비극과 국가발전의 전기

2016-07-09 (토) 김상준비영리단체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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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뉴저지 아콜라 연합감리교회에서는 6.25동란 발발 66주기를 맞아 인근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초청, 사 은만찬 자리를 마련했다. 교회 연례행사로 자리 잡아 올 해가 다섯 번째였다. 90세를 바라보는 40여 명의 노병들이 부인을 동반한 분도 있어, 50여 명이 되는 많은 분들 이 정시에 모여 들었다. 공식적인 환영 의식이 끝난 후 모두 자리를 잡고 사이사 이 끼어 앉은 교인들과 어울려 그 당시 추억을 서로 더 듬으며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다.

교회가 마련한 다양한 여흥프로가 순서대로 펼 처질 때마다 탄성과 박수가 이 어졌다. 선교부 여성 신도들이 정성 것 손수 준비한 풍 성한 음식도 즐겨 들었다. 그들의 은공에 감사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당시 치안을 유지할 정도의 가볍게 무장한 한국군은 소련과 중공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탱크와 중화기로 중무 장한 북한군의 새벽 급습 남침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3 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도 안돼 낙동강까지 후퇴 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이 촉각을 다툴 때, 미군을 중심, 유 엔군의 참전으로 한국이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이들의 희생정신은 전쟁사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었다.

우리 국민이 처했던 좌 절의 시기에 용기를, 냉담 무력의 시기에 신념을, 도저히 담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역경에 불굴의 의지를 불러 일으 켰다. 6.25사변은 동족간에 총을 겨누어 피를 흘린 처참한 비극이고,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깡그리 파괴한 가슴 아 픈 전쟁이었다.


우리 민족은 이 처참한 비극적 상황에 매 몰되어 땅을 치며 의분에 떨고만 있지 않았다. 분기탱천 하여 역경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전쟁으로 양반계급이 몰락(‘에헴’ 문화 소멸) 하고 신분상의 위계도 무너지면서 평등사회가 실현되었다. 근대화를 가로 막는 낡은 의식구조, 사농공상의 신분구조가 깨지고 실용적 의식구조가 정립되었다. 전쟁 중에 북한 주민 9백만 중 140만 명이 목숨 걸고 남쪽을 택했다.

기독교인, 지식인 유산계급 등 사회구성 내 엘리트층이 대부분이었고, 북한에는 속말로 흑사리 껍 데기만 남았다. 당시 근대화 선도그룹인 군 엘리트 대부 분이 북에서 탈출한 청년들 이었다. 공산치하의 고통을 체험한 국민들은 반공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되었고, 정부 는 내란세력을 강력히 소탕했다. 정치안정이 장기간 지속 되어 국가 발전에 총력 합심하여 매진할 수가 있었다.

정권을 잡은 젊은 근대화 세력들이 북한 일본에 대한 질투심, 경쟁심이 발로되어 “쪽발이는 했는데(조국 근대 화를) 우리는 왜 못해“ 라는 질투심과 “북한에는 질 수 없다”는 경쟁심을(그 당시 북한의 국력이 남한 보다 우위 에 있었음) 발전의 정신적 동력으로 삼아 국가발전에 매진했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전쟁 위험성이 중화학 공업육성에 역점을 두고 발전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한미 상호 방위조약으로 ‘한국은 미국이 지켜 주어야 할 국가’로 세계에 알려졌다. 투자의 위험성이 적은 안전 국가로 평가되어 외자도입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활발한 무역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긍정적 사항들을 치밀한 계 획으로 국가 발전에 효과적으로 선용했다. 지속적인 고도성장으로 최단시간 내에 조국을 세계최대 빈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세계가 선망하는 기 적이었다. 이제 한국의 경제 발전 실례는 ‘후진국 경제 발전 론’의 전범이 되었다. 6.25 사변을 변화의 전기로 삼아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였다.

<김상준비영리단체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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