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의 1인화장실

2016-07-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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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한국 강남역에서 ‘안전화장실’ 캠페인이 펼쳐져 ‘남성용과 여성용 시설로 분리해 주세요.’,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난 강력범죄를 처벌해주세요’를 주장했다. 지난 5월 20대여성이 강남역 인근 건물의 공중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성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을 계기로 공중화장실 범죄예방 취지였다.

전국아동여성안전네트워크는 경찰과 연결된 비상벨 설치, 경찰의 정기적 순찰, 남성과 여성용 시설 분리, CCTV 설치 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안전한 화장실을 함께 만들 것을 호소했다.

한국에서는 공중화장실 범죄 가중처벌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남녀 화장실 구분을 위해 지자체, 관련기관들과 협력을 지속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은 이와 반대로 1인용 화장실의 남녀 구별을 철폐하고 있다.


올해 46회째를 맞은 뉴욕시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Gay Pride Parade)’가 6월28일 열려 동성애에 대한 보호와 관용을 요구했다. 이 날, 뉴욕 경찰차도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채색했다. 퍼레이드 이틀 전인 6월 24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리니치 빌리지 ‘스톤월 인’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하는 등 뉴욕은 동성애자의 성지가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6월 21일 뉴욕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1인용 화장실 성중립 표시 의무화 조례안(Int. 0871)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여성용 화장실 간판이 붙은 1인용 화장실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며 성중립(Gender Neutral), 남녀공용(Unisex), 그외 Inclusive, All Gender Restroom 등등으로 간판을 달아야 한다. 이 조례안은 공중화장실, 식당 등 업소와 교회, 사무실에도 적용된다.

이번 조례안 대표 발의자는 트랜드젠더 등 성소수자의 화장실 이용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 내에 성소수자는 어느 정도를 차지할 까.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4년 발표한 바에 의하면 성소수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약 3.5~4%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성소수자를 5%로 보고 나머지 95%는 신체와 성 정체성이 똑같이 남성인 사람, 신체와 성정체성이 똑같이 여성인 사람이다.

이 95%가 남성용, 여성용 화장실을 찾지 못해 1인용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하자. 생리현상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1인용 화장실에서 막 나왔는데 바로 문밖에 낯선 이성이 혼자서 기다리고 있다면, 서로 얼마나 난감할 지. 또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이다. 수년 전부터 대학가와 정부기관 중심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성중립 화장실은 이같은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뉴욕이 다양성, 다민족의 도시, 모든 것이 오픈된 도시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이번 1인용 화장실 간판 문제는 남녀 95%의 가장 사적이고 편안해야 할 화장실 이용권을 침해한다.

작년에 이어 올 게이 퍼레이드에 4~5살 남자 꼬마들이 어른 트랜스젠더와 똑같이 짙은 화장에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함께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어린이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기도 전에 호기심으로,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하다가 실제로 태어난 성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게이 퍼레이드에 힐러리 클린턴,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 등 거물급 정치인이 대거 참여하여 성소수자의 평등에 대해 주창했다. 뉴욕에서 성소수자를 이해 못한다면 뉴요커 자격이 없어 보인다.

뉴욕에 살자면 더러 불편해도, 일부 내 맘 같지 않아도 수용해야 할 것이 많다. 1인용 화장실 총체난국의 시대지만 그래도 화장실 예법은 지키고 살자. ‘새는 날 때 앉았던 자리를 더럽히지 않는다(Never cast dirt into that fountain of which you have sometimes drink)’는 일본 속담이 여기에 해당 될 것 같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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