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노 쇼’(no show) 페널티 빌 50달러가 병원에서 날아왔다며 너무 야박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진료 예약을 하고 갑자기 일이 생겨 촉박하게 캔슬을 했는데 예사로 여겼던 것이다. 미국 병원 중에는 환자가 예약 후 나타나지 않거나 당일 취소를 하면 ‘노 쇼’ 벌금을 물리는 곳이 적지 않은데 이를 몰랐던 것이다.
원래 ‘노 쇼’란 항공사의 예약부도를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업종과 일상에서도 폭 넓게 사용하고 있다. 혹시라도 ‘노 쇼’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별일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고객이 있다면 재고하기 바란다. ‘당하는 업소’ 입장에서는 보통 열불 터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취재 차 만난 한 애견 호텔 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예약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고객이 오지 않아 전화를 하면 아예 받지 않거나 겨우 통화가 되어도 한다는 말이 “어머 우리 강아지 벌써 다른 데 맡곁는데…”라던가 “친척이 봐주기로 했어요”라며 끊더란다.
‘노 쇼’의 피해자는 비즈니스 뿐 아니다. 주택을 매물로 내놓은 한 홈 오너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셀러의 전화를 받고 중요한 약속까지 미루며 어린 아들과 함께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보기 좋게 바람을 맞았다. 그는 “2주 사이에 벌써 두 번째 당하니 황당하다”며 “대체 남의 시간은 이렇게 허비되어도 좋다는 것인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에 비해 비교적 ‘노 쇼’에 ‘무덤덤하던’(?) 한국에서도 이제 ‘노 쇼’가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유명 셰프들이 등장하는 ‘노 쇼 근절’ 공익 광고가 쉴 새 없이 방송에 나오고 대기업들은 자체 캠페인을 벌이겠는가.
때 마침 대한항공이 ‘노 쇼’ 근절을 위해 국제선에도 예약부도에 대해 위약금을 부과키로 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대한항공은 한국 국내선에 대해서만 예약부도 위약금을 물렸으나 갈수록 ‘노 쇼’ 비율이 상승하자 이 제도를 국제선에도 확대했다.
한국의 공공기관에도 ‘노 쇼 족’들이 활개 치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에서는 조사 날짜에 나타나지 않는 고소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정보공개 자료를 청구하고 찾아가지 않는 서류는 무려 600만장에 달한다니 이런 행정력 낭비가 어디 있을까.
더 기막힌 일도 있다. 경기도 한 도시에서는 희망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행사를 도와주기로 약속한 자원봉사자 800여명 중 200여명이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자원봉사’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대수롭지 않은 듯 ‘노 쇼’가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약속 경시’ 풍조다. 예약도 일종의 ‘계약’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또 아직 많은 곳에서 ‘노 쇼’에 대해 큰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도 이를 부채질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노 쇼’ 비율이 70%에 달하는 한국의 철도의 경우 출발 전 1시간 이내에 취소해도 위약금은 요금의 10%에 불과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의 ‘예매전쟁’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허수’의 예약이 만들어 낸 거품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의 ‘노 쇼’ 비율은 한국에 비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철도의 경우도 3% 내외다. 한인사회도 예전보다 ‘노 쇼’ 비율이 개선되는 추세다. 한인타운 내 한 치과는 “오래된 환자들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인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분명하다”며 “10여년 새 ‘노 쇼’가 크게 줄면서 지금은 10% 미만”이라고 말했다.
‘노 쇼’는 ‘무책임’과 다름없다. 업소에게 혹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다른 사람의 기회마저 차단해 버린다. 페널티가 무서워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고 예약문화의 기본이다. 누구나 ‘반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의 비즈니스라면 버젓이 ‘노 쇼’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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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 특집2부장·부국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