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먼로 독트린과 돈로 독트린

2026-01-13 (화) 12:00:00 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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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의 불간섭 원칙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은 유럽 열강의 미주 대륙 개입을 차단하고, 미국 역시 유럽의 정치·군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상호 불간섭 원칙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이 약화되고, 중남미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미주 대륙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어적 선언이었다. 당시 미국은 아직 세계 최강국이 아니었고, 먼로 독트린은 힘의 과시라기보다 “유럽은 오지 말라”는 외교적 경고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원칙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미국 중심의 질서 구축 논리로 변형됐고, 20세기 들어서는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토대로 확장됐다.

#돈로 독트린의 등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 회자되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은 먼로 독트린에 트럼프의 이름 ‘도널드(Donald)’를 결합한 신조어다. 단순한 조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 개념은 미국 외교 노선의 질적 변화를 상징한다. 전통적 먼로주의가 불간섭을 전제로 한 소극적 방어 논리였다면, 돈로 독트린은 서반구를 미국의 배타적 전략 공간으로 규정하고 적극적 개입과 압박을 정당한 수단으로 삼는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전격 체포, 그린란드에 대한 군사력 사용 시사, 파나마 운하 통제권과 캐나다 병합 발언 등은 이 노선이 더 이상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식 선택적 개입주의

트럼프식 서반구 우선주의는 겉으로는 고립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선택적 개입주의’에 가깝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 직결된 지역에는 정치·군사·경제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개입한다. 동맹과 국제 규범보다 거래와 압박을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돈로 독트린’은 먼로 독트린의 부활이라기보다, 국가 안보를 경제적 이익과 동일시하는 ‘돈길(Money-road) 독트린’으로 불러도 무리가 없다.

#중남미 개입의 유산

역사는 미국의 중남미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과테말라, 쿠바, 칠레, 니카라과, 파나마 등에서의 개입은 민주주의 정착보다는 내전, 군사 독재, 대규모 이주 난민과 범죄 확산을 초래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관철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경 위기와 지역 불안정이라는 부메랑이 돼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베네수엘라 역시 정권 붕괴 이후를 감당할 제도적·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권력 공백과 무장 세력 난립이라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흔들리는 국제질서

돈로 독트린의 가장 큰 문제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미국 스스로 훼손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서반구에서 힘으로 세력권을 설정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다른 지역에서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을 막을 명분은 약해진다. 그 파장은 한반도와 대만, 우크라이나, 이란은 물론 북극권과 그린란드까지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다시 국제정치의 기준이 되는 순간이다.

#위험한 회귀

먼로 독트린이 ‘간섭하지 않음’을 약속한 선언이었다면, 돈로 독트린은 군사력과 강압을 마다하지 않는 함포 외교를 21세기에 되살리는 개념이다. 이는 현대 국제질서를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리는 위험한 신호다. 트럼프의 이런 행보는 단기적으로 미국의 힘을 과시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맹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세계 불안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이미 힘에 의존한 패권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노세희 부국장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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