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빛나는 깃발

2016-07-05 (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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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선포되었다. 56명의 지도자들이 영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서명하였다. 그것은 목숨을 건 서명이었다. 이들 중 제 명을 다 산 사람은 몇이 안 된다. 다섯 명은 영국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고, 아홉은 전화 속에 전사하였으며, 열 두명은 재산이 파괴 방화당하고 자녀들까지 죽임을 당하였다.

버지니아의 부호 토마스 넬슨은 전 재산 200만 달러를 던져 프랑스 함대를 유치하여 영국과 싸웠다. 결국 사재를 국방비로 쓴 것이지만 독립 후에도 반환받지 않았고 그의 은행 계정은 파산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델러웨어의 토마스 맥킨은 영국군의 수색에 쫓겨 다섯 달동에 다섯 번 이사를 하여 도망 다녀야 하였다. 자유를 위하여 고생하고 피를 흘린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미국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조기가 국기로 공포된 것은 1777년이다. 존 아담스 대통령이 필라델피아 의회에서 국기 제정 선언을 하였다. 성조기는 세 개의 색깔을 썼다. 줄 문의는 빨강과 흰 색, 별들은 푸른 바탕에 흰 별이다. 모양 보다는 색깔에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흰 색은 정결, 빨강은 용기, 파랑은 정의이다.


이 세 개의 덕목으로 표현된 미국의 건국정신은 모두 자유와 연결된다. 정의는 자유의 기초이며, 용기는 자유 성취의 방법이다. 정결은 청교도(Puritans) 개척민의 신조로서 기독교의 영향인데 죄와 악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결국 성조기는 자유의 깃발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은 여러 이민들이 모여 자유라는 공동목표를 함께 이룩하고 함께 지키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의 최대 이슈는 영국의 EU(유럽동맹) 탈퇴인데 이런 고립주의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 까지 파급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팽배하게 감돌고 있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백성이 자유의 깃발 아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다. 자기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자유를 만끽할 뿐이 아니라 자유를 억압받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는 자연히 정의의 문제가 된다. 소수 인종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흑인의 인권문제나 북한의 인권문제도 흑인이나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한 배에 탔고 공동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한다. 자유를 제한하면서도 유토피아를 선전한 공산주의의 말로를 보면서 자유가 주의나 사상보다 낫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미국의 국가 ‘별빛 찬란한 깃발(The Star Sprangled Banner)’은 1814년에 탄생되었다. 필자의 번역을 소개한다. “새벽빛을 뚫고 그대는 보았는가/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여명 속의 깃발/ 사나운 싸움을 헤치고 드러났던/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 요새 위에 힘차게 나부끼었지/ 포화는 하늘을 붉게 물드렸는데/ 우리의 깃발은 여전히 그 자리에/ 밤을 새워 우뚝 솟아있었구나/ 별빛 찬란한 깃발은 지금도 나부낀다/ 저 자유의 땅에 저 굳센 고향에”

이 시는 변호사 프랜시스 키(Francis S. Key)의 작품이다. 그는 영국 군함에 억류된 의사 빈즈 씨를 구출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볼티모어에 대한 함포사격이 곧 시작되므로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밤새도록 적군의 함정에서 내 고향, 내 친구들이 포격당하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그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요새 위에는 여전히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 영감이 떠올라 종이쪽지에 얼른 적어 내려간 시가 ‘별빛 찬란한 깃발’이다.

미국도 오늘날의 영국처럼 고립주의를 택할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비취는 찬란한 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의 명언이 생각난다. “믿음과 자유가 미국 안에 보장되고 있는 한 미국은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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