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시고기’아버지는 옛말

2016-06-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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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요즘 물고기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연어와 가물치, 가시고기를 통해 모성애와 부성애, 효심을 부르짖고 있다.

한국에서 지난 5월 어버이날, 아버지를 살해한 40대 남매의 범죄를 비롯 11세 아들을 폭행하다 죽인 아버지와 거기에 동조한 어머니 등, 올 들어 빈번한 존속살인 및 패륜 범죄로 무너져가는 가정을 바로 세우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먼저 연어이야기다.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 갓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이 먹이를 찾을 줄 모를 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어미 연어는 극심한 고통 속에 새끼들이 마음껏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내버려둔다. 새끼들이 성장하는 동안 어미는 뼈만 남아 생을 마감하며 세상 최고의 모성애를 보여준다.


그리고 가물치 이야기, 이 물고기는 알을 낳은 후에 바로 실명을 하여 먹이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부화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이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의 입에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워준다고. 새끼들의 희생에 의존하다 시간이 되어 어미가 눈을 뜰 때쯤이면 남은 새끼의 양은 십분의 일도안된다. 그래서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는 것.
SNS상에서는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물고기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하고 있는가 반성하는 글들이 눈에 뜨인다. 그런데 이는 연어와 가물치 두 물고기의 습성을 일부 따다가 지어낸 이야기인 것같다.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연어의 일생을 참조하면 연어는 한 배에 약 3,000개의 알을 품고 강의 중류에 서 산란한다. 부화된 어린 고기는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한 다음 민물로 돌아와 산란한다. 암컷이 구멍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위에 수정을 시키고 이러한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산란을 끝낸 암수는 지쳐서 모두 죽는다. 자식을 낳고는 장렬하게 전사하는 물고기 부부가 언제 자식들에게 먹힐 기회가 있는가. 3~4개월만에 부화된 알은 플랑크톤과 곤충 등을 잡아먹으며 성장한다.

물론 남에게 자신의 알을 위탁하는 얌체 물고기가 있고 알을 지키다가 자기보다 큰 물고기가 나타나면 도망가 버리는 물고기도 있지만 가물치나 가시고기는 알이나 치어를 끝까지 보호한다.
가시고기 수컷은 부성애가 지극하다. 암컷이 산란을 하고 떠나면 알이 부화될 때까지 먹지도 잠자지도 않고 알을 보호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무렵 생을 마감한다. 이 가시고기를 소재로 한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한국 IMF로 가족 해체를 겪은 아버지의 애환을 다루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식의 골수이식 비용 마련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아버지는 자신이 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결국 각막을 팔기로 한 아버지의 희생에 수백만 국민이 눈물을 흘렸었다. 이 한국적인 아버지가 미국에 와 이민 1세가 되었고 자식은 1.5세 혹은 2세가 되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부모와 자식관계는 한지붕 아래 두 개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자식을 과잉보호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기대하는 부모, 미국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식, 두 세대의 갈등이 깊은 가정이 많다. 오는 19일은 아버지날인데 오늘날 한인 아버지의 위치는 어디일까. 자식의 자랑이 되는 아버지도 있지만 굴곡진 이민의 삶으로 고개 숙인 아버지도 있다.

연어와 가물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의 희생을 말한다. 그 희생이 자발적인 것이라고 해도 남은 가족에게 평생 부담이 된다. 또 ‘가시고기‘ 아버지도 옛말이 되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자신의 재산을 자식에게 주지 않고 노후자금으로 하는 부모도 많다.

부모는 자녀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밥 먹이고 재워주고 보호하는 책임을 다하면 되고 자녀는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는 것으로 자녀의 도리를 다 하면 된다. 매년 5월을 ‘한인 가정의 달’로 지정하는 법안이 지난 9일 뉴욕주 상원을 통과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새삼 바람직한 부모, 바람직한 자식은 어떤 것인가 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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