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거로의 여행

2016-02-2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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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왔나 했더니 벌써 2월이 다 간다. 며칠 남지 않은 2월달 캘린더를 바라보면서 왜 2월은 이렇게 짧은 거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서양 달력의 역사는 이집트다. 인터넷은커녕 전기도 없는 시대에 당연히 해와 달과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이집트인들은 밤에는 보이지 않으니 낮에 해 그림자를 관측하고자 긴 막대기를 세웠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어로 ‘쇠꼬챙이’라 불리는 오벨리스크(Obelisk)다. 태양신 숭배의 상징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2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우리가 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있는 센트럴 팍에, 또 하나는 영국 템즈강변에 각각 놓여있다.

태양과 하늘과 연결하여 교감을 나누는 주술적인 의미의 긴 탑은 아침에는 그림자가 서쪽으로 길고 낮에는 북쪽으로 짧았다(이집트는 북반구). 저녁에 다시 동쪽으로 길어지니 그림자가 가장 짧은 한낮을 정오, 하루의 중심으로 삼았다.


로마의 대장군 줄리어스 시저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클레오파트라와 살다가 로마로 돌아와 이집트력을 기초로 만든 것이 율리우스력(기원전 45년)이다. 11월 1일 율리우스 달력을 공표하면서 그 달을 1월로 정하니 한 해의 마지막이 2월이 되었다. 365일이 되는 해에 어느 한달은 29일이 되어야 하는데 만만한 게 마지막 달이라 2월이 29일이 되었다.

시저는 또 자신의 생일달인 7월을 율리우스(Julius)로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신의 생일인 8월을 아우구스투스( Augustus)로 정하면서 원래 30일로 된 8월이 황제의 생일달로 짧다며 31일로 만들고 대신 2월을 하루 줄여버려 28일로 해버렸다. 그래서 2월은 평상시에는 28일, 윤년에는 29일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양력은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만든 그레고리력이다. 어쨌거나 2월이 짧은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으니 달력은 문명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황제의 무소불위 권력도 보여준다. 지금, 문명의 혜택을 다양하게 누리고 살지만 가끔 고대의 향수를 맛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연사 박물관이 안성맞춤이다.
지난 1월중순 이곳으로 길이 122피트의 거대한 공룡을 보러 갔다. 티타노사우르스 공룡의 일종으로 실제 크기와 똑같은 모형 공룡은 머리를 젖혀서 천정을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몸체가 장대했다.

축구 운동장 보다 큰 전시장에 이 모형 공룡을 다 넣을 수가 없어 입구에서 로비로 10미터 길이의 목과 위압적인 얼굴이 툭 튀어나와 있다. 2014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된 이 공룡 화석은 무게가 70톤으로 아프리카 큰 코끼리 열 마리 정도의 몸무게로 추측된다 한다. 무려 1억5,000만년 이상 전세계 모든 대륙을 누비던 공룡이 일시에 사라진 원인으로 화산 폭발, 갑작스런 지각변동 등 60여 가지의 가설이 있으나 그 중 하나가 소행성의 지구 충돌이다.

지난 1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나사)은 소행성과 혜성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방위기구를 발족했다. 이 기구는 지구근접 물질을 추적하고 잠재적 위험물질을 조기에 발견해 지구를 향하는 이런 물질의 방향을 바꾼다. 그러니까 공룡 실종의 원인일 수 있는 소행성 지구충돌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거다.

암석으로 이뤄진 다양한 크기의 소행성이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군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지구와 충돌한다고 하자. 지구의 핵전쟁이 문제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문명도 먼지가 되어버린다. 6,500만 년 전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의 자취를 찾아보거나 하룻밤 TV와 셀폰을 끄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자. 우주의 신비를 탐색하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면 내가 사는 세상은 찰나가 된다. 욕심이 없어진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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