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뀌는 세상, 바뀌지 않는 입맛

2016-02-23 (화) 노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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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가끔 들리던 일본식당에 오랜 만에 갔는데 입구에 ‘오늘의 스페셜’ 메뉴 샘플이며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미소국 맛을 보자마자 ‘아, 아니구나.’ 했다. 멀건 미소국으로 주인이 중국인으로 바뀐 것을 알았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일본 식당이 점점 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대로 된 일본 음식 맛을 보기가 어려워진 것도 요즘처럼 빠르게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세상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 중에 하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이제 고전(古典)이다. 요새는 급변하는 세상을 매일매일 피부로 느낀다. 친구랑 카톡으로 통화를 하다가 전화가 와서 급히 카톡을 끊고, 나중에 들으니 친구 카톡에 <상대방이 일반 전화가 와서 전화를 끊었다.>라는 메시지가 뜨더라고 했다. 점점 더 프라이버시가 없어져가는 세상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 과연 인간세상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아무리 테러리스트라도 해도 소비자의 정보를 밝힐 수 없다는 애플사의 입장도 다소 이해가 된다. 인스타 그램이나 몇 마디 트위터가 순식간에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인간세상은 점점 더 혼합 되어간다. 그러나 오랜 세월 길들여진 전통을 찾는 입맛은 무척이나 천천히 바뀌는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웨체스터는 일본회사 지사원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맨하탄으로 통근하는 그들에게는 기차로 30, 40분 거리이면서 학군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에는 일본 학부모회가 매년 ‘일본 페스티발’을 열었고 어딜 가나 일본인들이 많았다. 물론 20년이 넘은 세월이긴 해도 최근에는 일본 학부모회는 거의 없어졌고 한인 학부모들의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H 마트에는 한국 사람보다 중국 사람이 더 많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이 일본 식당을 운영하고 있음을 잘 알고는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면 역시, 실망을 하곤 했다. 더구나 20, 30년 전부터 한 자리에 있던 일본식당이 그 이름 그대로 주인만 중국 사람으로 바뀐 것에는 실망이 더 크다.

차라리 퓨전 음식이라면 모를까. 스시 주문에 핫 앤드 사워 수프 초이스가 있는가하면 주먹만한 차가운 밥 덩어리에 얇은 생선회가 얹힌 스시에는 화가 날 정도이다. 드라이아이스까지 동원해 연기를 뿜는 음식 접시 등 중국 스러운 지나친 장식까지도 일본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없게 만든다.

웨체스터에는 예전부터 우동을 잘하는 집, 좀 비싸지만 초밥과 생선회가 정말 맛있는 집 그리고 런치 스페셜이 싸고 알차다고 소문이 난 일 식당이 꾀 있었다. 이제 그런 일본식당들 대부분이 중국인이 하는 맛없는 일식당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아쉽다. 이러다가 중국인들이 이태리 음식점이나 인도 음식점까지 하는 것은 아닐지. 아직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분초를 다투며 세상은 바뀌는데 입맛은 바뀌질 않았다. 그나마 한두 집 남아 있는 일본 식당이라도 그대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노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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