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망우리 돌리기’

2016-02-22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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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4일)이 지난 대지에 봄기운이 서서히 퍼진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19일)도 지났다. 그러다보니 오늘(22일)이 정월대보름이다. 음력 1월15일. 설날을 맞은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 대보름이다. 큰 보름이란 의미도 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인 셈이다.

어린 시절 고국에서 쇠던 정월대보름.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추억은 눈에 선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더위팔기’에 나섰다. 눈뜨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외쳤다. 언제나 그 대상은 작은 누나였다. ‘부럼 깨물기’도 했다. 잣, 호두, 땅콩 등을 껍질째 깨물고 뱉었다. 일 년 열두 달 부스럼, 뾰루지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70년 대 초 초등학교 시절. 봄방학을 앞둔 대보름날에는 친구들이 학교로 부럼을 가져오곤 했다. 주로 호두였다. 먹기가 아쉬워(?) 손 안에서 굴리기만 하던 친구도 있었다. 손아귀 힘을 키운다는 이유였다. 호도를 깨면 친구들끼리 나눠 먹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도시락에 잡곡이 얼마나 섞여있는지 검사할 정도였다. 호도는 오랜만에 먹는 간식이자 영양식이었던 것이다.


낮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오곡밥과 나물을 훔쳐 먹기도 했다. 동네 친구, 형들과 삼삼오오 모여 다녔다. 이웃집 부엌을 거리낌 없이 넘나들었다. 어쩌다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혼내기는커녕 모른척했다. 오히려 천천히 더 많이 먹으라고 반길 정도였다. 그 땐 왜 그런 줄 몰랐다. 더위팔기, 부럼 깨물기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남의 집 밥을 훔쳐 먹어도 괜찮았던 이유를. 그저 그냥 배부르니 좋았을 뿐이었다.
나중에야 더위 파는 풍속에는 남보다 먼저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부럼을 깨물고 뱉었던 것도 건강을 기원하는 가정적 교훈이 서려 있음을 알게 됐다. 더불어 정월대보름에는 김. 이, 박 등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아진다는 뜻이 전해내려 온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오곡밥을 얻어먹으러 많은 사람들이 와야 풍년이 든다고 믿는 것이 세시풍속임도 배울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엔 대보름을 앞두고 쏟아지는 달빛 속에서 불놀이를 많이 했다.
동네 한복판에 있던 밭에서는 마른 호박 넝쿨을 모아 불을 피웠다. 불길은 키보다도 높게 치솟았다. 불길이 잦아들면 그 위를 뛰어넘어 다녔다. 그 땐 그 것이 용기였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달랐다. 불이 부정한 것을 없애준다고 생각했다. 잡귀를 물리쳐주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대보름 날 밤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그리고 집안 아이들이 나이 수만큼 뛰어넘도록 했던 것이다.

불놀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망우리 돌리기’다.
그 당시엔 깡통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우선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여기, 저기 낸다. 키에 맞추어 전선으로 끈을 만든다. 깡통 속에는 숯불을 넣는다. 전선줄을 잡고 원형으로 돌린다. 구멍 난 깡통사이로 바람이 들고 회전력에 의해 활활 타오른다. 그야말로 대보름 밤을 환히 수놓는 멋진 광경이었다. 그렇게 빨갛게 달아오른 불 깡통 돌리며 자정 가깝도록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사이 쫄쫄이 바지와 나일론 잠바는 군데군데 불구멍이 난다. 어머님께 심한 꾸중을 듣는다.

정월대보름이면 으레 윗동네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낮은 언덕을 사이로 서로 불 깡통을 집어던진다. 그러다가 양편에서 돌팔매가 시작된다. 돌보다는 연탄재를 던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감정이 격앙되면 언덕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밤이 늦도록 서로 쫓고 쫓기고를 반복하다가 새벽녘에서야 끝나곤 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기억은 생생하다.

정월 초하루 해가 바뀌고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덕담 인사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정월대보름이다. 오늘 밤에는 보름달이 뜬다고 한다. 이젠 지난 추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둥근달을 향해 가족과 이웃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해야겠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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