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

2016-02-16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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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의 소개로 어떤 이와 첫 만남을 가졌다. 저녁식사에 가볍게 술을 곁들였다. 그는 참 말을 잘했다. 아는 것도 많았다. 시사 역시 밝았다. 재치와 유머도 타고난 듯했다. 물론, 술자리라 화제는 그렇고 그랬다. 시간이 좀 흐르자 문제가 생겼다. 혼자만 떠드는 수다쟁이였다. 심지어 상대가 말하려면 막는다. 상당히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이야기 때는 딴청을 부렸다. 말은 많이 하면서 듣는 데는 굉장히 인색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말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다.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그러니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청득심(以請得心)이란 말이 있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이란 뜻이다. 그러나 말을 경청하기란 쉽지 않다. 경청은 기술과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한참 동안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듣게 된다는 의미일 게다.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이고 주의해 듣는 것이다. 경청의 ‘들을 청(聽)’자는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마음 심(心)이 모여 만들어진 한자다. 왕처럼 큰 귀와 열 개의 눈을 갖고 서로 한마음이 되도록 들으라는 뜻이다. 경청의 완전한 의미는 귀로 음성을 듣고, 눈으로 상대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고, 마음으로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을 말함이다.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큰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귀담아 말을 듣는 것이란 의미다.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도 입보다 귀를 높은 지위에 두라고 조언한다. 사람의 입이 하나고 귀는 두 개니, 듣는 것의 절반만큼만 말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것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법이다.

경청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무시하며 듣는 경청이다. 이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귀를 막아버리는 경우를 말함이다. 듣는 척하는 경청도 있다. 상대방 말에 반응을 하지만 속마음은 딴 곳에 있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진정한 대화에 꼭 필요한 공감적 경청도 있다.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더불어 상대방 입장에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시작이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어낸다. 서로 대화도 잘하는 열쇠 같은 존재다. 자기 생각, 판단을 버리고 마음이 비워진 상태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경청인 것이다. 경청을 배워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인 셈이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는 책자에 ‘1;2;3의 법칙’이 나온다. 자기의 말은 1분만 하고, 상대의 말은 2분 들어주는 것. 그리고 상대가 말하는 동안 3번의 맞장구를 치는 이론이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현명한 대화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듣는다’는 비난은 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올바른 대화의 열쇠는 ‘경청’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귀담아 잘 듣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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