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의 사랑

2016-02-13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크게 작게
순수한 사랑. 어떤 게, 아니, 어떻게 하는 게 정말 순수한 사랑일까. 육체를 떠난 영혼만의 사랑. 글쎄, 영혼끼리 하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혼들의 사랑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나. 사랑은 육체를 떠날 수 없는 건가. 다분히 감정이 깃들어 있는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라 부를 수 없나.

로미오와 줄리엣, 러브 스토리 등의 사랑이야기를 통해서도 육체적 감각과 감정을 떠난 사랑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가 죽어서 그의 영혼과 영혼결혼식을 올린 다음 지금까지도 처녀로 살아오는 여인도 있다. 죽은 그 남자는 총각 때였다. 이런 게 진정한 순수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순수한 삶. 어떻게 살아가는 게 정말 순수한 삶, 혹은 순수한 생(生)이라 할 수 있을까. 윤동주의 서시(序詩)에 나타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가는 생이 진정 순수한 삶일까. 그런데 어떻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하나 없이 살아갈 수 있나. 육체를 가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순수한 사랑과 순수한 삶의 결정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한 마디에 들어있는 것 같다.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떠난 순수한 사랑을 또 다른데서 느껴볼 수는 없는지. 그걸 우주의 사랑이라 해 보면 어떨까. 우주의 사랑! 우주에도 사랑이 존재하는 걸까. 다분히 감각적이지 않고 느껴볼 수도 없는 무색무취의 물과 같은 사랑이 우주의 사랑일까. 존재 자체를 있게 한 우주의 사랑. 존재를 가능케 한 사랑이라 불러야 하나.

그렇지. 존재하지 않는 한 사랑도 삶도 없는 거 아니던가. 내 몸이, 내 영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사랑, 무슨 삶이 펼쳐 질 수 있는가.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던, 순수한 삶이던 존재위에 있는 것이지, 존재 자체가 없다면 사랑도 삶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건 살아 있음에의 근원이 우주가 준 순수사랑에 힘입고 있음에야.

암으로 고생하는 친구가 보내온 말. 수술이 잘됐다고 담당의사가 말했는데 어쨌건, 수술 후유증으로 한 밤에 여러 번 깨어서 소변을 봐야 한단다. 방광암으로 수술을 한 거라 방광에 문제가 생겨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다 보니 금방 소변이 방광에 차고 그 찬 것이 방광을 압박해 통증을 일으킨단다. 한 마디로 고통의 연속이란다.

그래도 그가 전한 말. “한 밤에 고통으로 인해 수 없이 깬다 해도 생명이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존재에 대한 감사이자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존재에 대한 사랑과 감사는 삶, 즉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지 않을까. 순수한 삶과 사랑. 존재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순수한 삶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는지.

우주의 사랑.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보라가 치고 폭풍이 불은 다음엔 반드시 눈부신 태양을 뜨게 하고 훈풍이 불게 하여 지구와 인간들을 감싸 안아주는 그런 사랑. 선(善)한 사람이나, 악(惡)한 사람이나, 똑 같이 태양빛을 뿌려주며 비를 내려주는 우주의 사랑. 인간의 개념으론 도저히 상상키 어려운 우주의 삶과 사랑이다.

밸런타이데이에 생각해 본다. 유일회(唯一回)의 일생. 우주의 입김에서 태어나 우주의 도움인 빛과 공기의 혜택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 정말 순수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랑. 진정 우주의 사랑이 그런 사랑일 듯싶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