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조의 양심”

2016-02-12 (금)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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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굽는 흙을 도토(陶土)라고 한다. 도토는 화강암이 오랜 풍화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퇴적지층에서 흔하게 나온다. 퇴적지층 안에는 규산, 장석, 알루미늄같은 강한 화학적 성분과 다양한 불순물이 무질서하게 혼합되어 있다.

도공은 산에서 취한 도토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가소성이 낮고 고유의 성질이 너무 강해 그릇 빚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공은 먼저 채취한 도토를 잘게 부순다. 채로 곱게 걸러낸 다음 1년 이상 건조한 후에 쓴다. 오랜 건조를 거친 도토는 본래의 자기 성질을 버리고 가소성이 높은 점토로 변화된다.

나무에게 건조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나무는 본래의 성질을 그대로 복원하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다. 나무가 살아 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산비탈에서 자란 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강한 복원력을 지닌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강제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놓으면 나무는 반항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을 깨려고 몸을 비튼다.
얼마 전 광화문 중앙에 걸린 백송 현판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포도나무 줄기처럼 뒤틀어져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나무가 본래의 성질을 죽이고, 새 자리에 자리 잡을 시간을 주지 않고 억지로 힘을 가해 생긴 일이다.


베어 낸 나무를 제대로 쓰려면 본래의 거칠고 무질서한 성질을 조용히 달래면서 가라앉힐 건조의 시간을 나무에게 주어야 한다. 잘 건조된 나무를 사용하면 뒤틀림, 수축, 부후, 변형, 변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집을 짓는 나무의 함수율은 18% 이하가 좋다. 가구의 함수율은 12이내이면 최적이다. 건조의 방법도 인조건조보다 천연건조가 좋고, 벌채 후 낙엽이 붙은 채로 산에서 건조한 나무는 최상이다. 베어 낸 나무를 물위에 담가 말리는 수중건조는 방충, 방부효과가 커서 최고의 목재로 인정받는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세계 최고의 명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나무의 건조 과정에 있다. 바이올린은 온도의 변화에 민감한 악기이다. 스트라디바리는 온도 변화에 잘 견디는 특별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 그 특별한 나무를 알프스 정상에서 찾아내었다. 오래 동안 차고 매서운 눈보라를 맞고 자란 침엽수다.

선택된 나무는 베니스강 하류로 운반되어 일 년동안 수중건조 한다. 나무를 건져내어 절단한 다음 오븐에 넣고 낮은 온도로 천천히 건조한다. 이렇게 건조한 나무를 모래밭에 파묻어 놓고 2~3년을 또 기다린다. 긴 건조과정을 거친 나무는 웬만한 온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여 자연그대로의 소리를 공명해 내는 고품격 바이올린으로 태어난다.

나무만 그럴까. 인간에게도 건조는 필요하다. 충분히 건조되지 않아 함수율이 높은 나무를 목재로 쓸 수 없듯이, 본래의 거친 성품과 태도를 건조하지 않은 채로 그냥 쓰임 받을 인간은 거의 없다.

욱하는 성품과 다듬어지지 못한 민족주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고 40년을 외로운 목동으로 살았던 모세에게 거친 미디안 광야는 최적의 천연건조장이었다. 하나님의 선민 백성으로 출발했지만 끝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길로 갔던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이 벌을 받아 끌려갔던 바벨론 땅도 역시 천연건조장이었다.

13살에 불과한 어린 딸을 때려 숨지게 한 후 이불 속에 11개월 동안 숨겨놓았던 부모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아버지가 목회자이며 독일에서 학위 받은 신학박사라는 사실이다. 아, 슬프고 답답하고 민망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당신은 리더인가. 제발 잘 건조된 양심과 성품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라.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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