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짜와 가짜

2016-02-0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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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타계 10주기를 맞았다.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 및 특별전이 반평생을 살아온 뉴욕보다는 태어난 한국에서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월 27일 열린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 아트 미래’ 심포지엄에서는 백남준과 오랫동안 공동작업을 해온 동료들과 제자들이 모여 고인의 작품 ‘다다익선’을 비롯 망가져가고 있는 작품에 대한 보존대책을 의논했다고 한다.
전자기기는 내구연한인 10년이 지나면 노후 부품 교체나 수리가 필수이고 부품 중 단종된 것들도 많다고 한다. 작가 생전에 작품의 정통성이 훼손되지 않는 한 일부 종류의 수정을 허가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만일 작품에 사용된 뚱뚱한 모니터가 날렵한 평면화면으로 바뀐다면 과연 작가정신이 그대로 살아날까 염려된다. 이에 미디어 아트 전문가의 세심한 대비와 작품보존 노하우가 따라야 할 것이다.특히나 백남준의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 작품가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데 작년에 고인 작품에 대한 전속계약을 맺은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의 전격적 활동으로 국제미술계의 백남준 재평가에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


2013년에는 백남준의 가짜 작품이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에 진품인 것처럼 버젓이 전시된 적이 있다. 백남준의 ‘월금’ 위작은 백남준의 제자로 알려진 한 교수가 위작을 진품으로 속여 대여한 것으로 진품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육안으로도 크기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백남준뿐 아니라 최근에는 원로화가 이우환의 작품 위작(僞作) 논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화가 이우환은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회화시리즈로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인데 가짜 진품 감정증명서까지 첨부된 위작이 나돈 지 수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화가 천경자는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붓을 꺾었다. 천경자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 전시회에서 ‘미인도’가 전시되자 작가는 ‘내 그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술관측은 진품이 맞다고 했고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전문가집단인 한국화랑협회가 진품 판정을 했다. 그는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어미가 어디 있느냐’며 미국으로 가 국내와 연락을 두절했었다. 이후 작년 여름, 맏딸이 모친의 별세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다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전에도 2005년 이중섭의 위작 파문,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 위작 논란 등 대형 한국 화가들의 위작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위작 논란에 선 작가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까. 차제에 작가들은 작품을 양산하기보다는 절대로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는데 온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몇 달 전 한 내과를 찾았다가 진료실 벽에 두 개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그림은 고요히 흐르는 강과 나무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이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풍경화였다. 오른쪽 그림은 파스텔처럼 은은한 색상들이 다소 어지럽게 나열된 추상화였다.

“어느 그림이 좋으냐” 는 말에 “왼쪽 그림은 바라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오른쪽 그림은 성의가 없고 유치하다. ”고 했다.그런데 왼쪽은 교회 바자회에서 300달러 주고 샀고 오른쪽은 유명한 화가 A작품이란다. 그림 보는 눈이 그 정도냐고 하지 말라. 가격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마추어 그림이 더 마음을 끌었다. 작가의 혼이 담겨진 그림, 작가 이름보다는 수작이 대접받아야 한다. 허명보다는 진짜 좋은 그림, 좋은 시 하나에 한 인간의 치열함, 절실함이 담겨져 있으면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감동하게 된다.

“예술은 사기다”, 인생을 다 바쳐 예술에 투신해온 백남준이 던진 한마디가 생각난다. 백남준이 보는 진짜 예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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